충북연구원 연구위원

고등학생인 K군은 매우 내성적이다. 주변에서는 착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학교 성적은 2~3등급으로 나쁘지 않다. 호남형 얼굴에 키도 평균 이상이다.

K군을 처음 봤을 때 시골에서는 드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천방지축의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지나치게 얌전한 행동에 필자의 마음이 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주일,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데리고 유채꽃도로 소풍을 갔는데, 거기에서 일이 벌어졌다.

여러 학생들을 인솔하는 경우, 차량 통행과 개별행동에 유의해야 한다. 아내가 K군에게 뒤처지지 말고 따라오라고 말했는데 아마 K군이 듣지 못했나 보다.

그러자 K군의 여동생이 다가가더니 대뜸 오빠의 뺨을 때리면서 “빨리 오라고!”라며 소리를 질렀다. 필자의 아내는 너무 놀라서, “너 오빠한테 무슨 짓이니! 어서 사과해!”라고 요구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여동생의 대답이었다. “왜 사과해요? 오빠가 잘못 한건데요.” 집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K군의 가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K군의 부모는 유난히 교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외지에서 온 필자의 가족에 대해 대부분 반가움, 신기함, 궁금함 등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K군의 부모는 거의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난 며칠 전, K군의 아빠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K군이 중학교 때, 자신이 지시한 학습지를 풀지 않았다고 K군을 회초리로 100대나 때렸다는 것이다. 100대를 때린 아빠나, 그걸 다 맞은 아들이나 너무 충격이었다.

이 부부의 자녀 양육방식 중 가장 큰 문제는 아들에게는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반대로 딸에게는 지나치게 수용적이라는 것이다. 여동생의 오빠 폭력에 대해서도 “맞을 만 하니 그런 것 아니겠냐”는 대답이었다. K군의 ‘얌전하고 착한’ 모습은, 사실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나타나는 위축된 모습이었다.

자존감은 자신의 모습이 잘났든 못났든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이다. 실패하거나 잘하지 못해도 ‘그럴 수 있지, 다음에 다시 하면 되지’라는 회복탄력성이 좋은 마음상태이다.

반면, 자존심은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다. 잘할 땐 우쭐한 마음이 들지만, 실패하거나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주눅 들고 창피한 마음이 든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열등감도 심하다.

어떤 일을 잘하거나, 돈이 많거나,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직업이 좋기 때문에 우쭐한 마음이 드는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나면 초라한 마음에 시기하며, 기회가 되면 어떤 방법으로든 상대를 이기려고 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그런 사람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것에서 끝낸다. 주눅 드는 마음도 들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성공’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성공’을 위해 좋은 대학이 필요한 것이다. 성공한 부모의 지표는 자녀의 소위 스카이 대학 합격이 되었다.

대학 이후 자녀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자녀의 자존감은 뒷전이고, 오로지 성적으로 부모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한다. 결국 자녀를 자존감이 낮은 미숙아로 키우고 만다. 부모의 자존심이 자녀의 자존감을 죽이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이러한 양육태도는 부모가 자녀에게 저지르는 끔찍한 폭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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