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칼럼] 벗과 함께 영원한 일생을!
[김병연 칼럼] 벗과 함께 영원한 일생을!
  • 충청매일
  • 승인 2022.04.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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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주예총 부회장

눈 먼 아버지를 위하여 자기의 한 몸을 기꺼이 임당수에 던진 효녀 심청이나, 임진란 때 조국을 구하기 위해 백의종군(白衣從軍)했던 충무공 이순신! 이들을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것은 그들의 행적이 범인(凡人)으로선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실행하기가 어려운 것을 능히 실천하는 것을 ‘난행능행(難行能行)’이라고 한다.

작년과 올해 이태 사이에 필자와는 막역(莫逆)한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다. 필자보다 나이가 아래인 친구를 보낼 때는 더욱 안쓰럽다. 지난주에도 ‘난행능행(難行能行)’을 실천한 친구 하나를 보내야 했다.

40년 전 ROTC 출신으로서 충북 최남단 영동고에 그가 초임교사로 발령받아 우리가 만난 게 어제와 같다. 육척장신에 태권도로 단련된 그는 세상을 무서울 것이 없었다. 우리는 같은 국어과 교사로서 동학년 담임이었다. 일곱 살 아래인 그는 항상 필자를 ‘형님’으로 깍듯이 예우하였다. 그 당시에는 수업을 마치면 배구를 많이 했다. 직장대항 배구시합이 있을 때면 학생이나 교사나 잔칫집 분위기였다. 전교생들이 응원하는 바람에 신 바람난 선생들은 없던 실력이 나왔고, 우승이라도 할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기쁨이었다. 운동을 잘하는 선생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최고였다. 금상첨화로 그는 운동뿐만 아니라 성악에도 소질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틈만 나면 우리는 학생들과 한 팀을 이뤄 반 대항 ‘콜라와 빵 내기’ 시합을 했다. 그렇게 재미있게 지내다가 그가 북부지방으로 전근 가는 바람에 우리는 헤어졌다. 거기서는 배구를 하도 잘하는 바람에 그에게는 배구선수 ‘강만수’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10여 년 후에 우리들은 도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면서 재회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30여년을 줄곧 테니스로 함께 즐겼다. 테니스 때문에 웃을 수 있었고 우정은 더욱 깊어만 갔다. 게임에 지면 저녁을 내는 것이었다. 그가 이길 확률이 높았다. 게임에 지고 그와 함께 저녁을 먹자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어찌나 재미있게 그가 약을 올리는 며칠을 두고두고 입맛이 씁쓸하다.

그가 폐암 진단을 받은 것이 작년 4월이니까, 꼭 1년 만에 우리는 이승의 인연을 마감해야 했다. J여고 교장시절에는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절대적인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그는 관리자로서 탁월했지만, 그보다는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친구였다.

충북교육청 해양수련원장으로 재직할 때는 원장관사가 충남 보령과 제주도 두 곳에 있었다. 어쩌다 친구들이 부탁만하면 관사를 기꺼이 제공하였다. 나중에 이것을 충북도의회 모 의원이 문제를 삼음으로써, 그가 퇴직하고 난 뒤에도 이것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역시 그는 사내 대장부였다. 이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이렇게 그는 ‘난행능행(難行能行)’을 실천한 친구다.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이 값지고 행복하다. 그 친구와의 인연으로 필자의 지난 세월이 즐겁고 행복하였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난행능행(難行能行)’했던 그의 행적은 필자의 뇌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벗과 함께 영원한 일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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