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헌/ 안전보건공단 충북북부지사장

지난 22일 가습기 살균제 대참사를 다룬 영화 ‘공기살인’이 개봉됐다.

작품의 배경이 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가습기 분무액에 포함된 살균제로 인해 백만여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폐질환에 걸린 사건이다. 기업에서는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묵인했고, 출시 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 사회의 그 어떠한 모니터링 시스템에서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 했다. 현재까지도 진행중인 사건으로 영화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산업현장에서도 이러한 화학물질에 의한 참사가 발생했다. 창원 소재 모산업과 김해 소재의 모기업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트리클로로메탄’이라는 유해화학물질에 급성 중독된 것이다. 두 기업 모두 노동자가 피로 등 이상증상을 호소한 가운데 직업성 질병을 의심한 의사가 관계당국에 신고를 하면서 조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총 29명의 노동자가 급성 중독으로 직업성 질환 판정을 받았다.

‘트리클로로메탄’은 발암성과 생식 독성이 확인돼 연구용, 제한적인 산업적 용도로만 사용이 가능한 물질이다. 하지만 두 회사는 이 물질이 기준치의 작게는 4배에서 8배 이상 함유된 산업용 세척제를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 세척제를 직접 사용한 노동자들이 제품에 이런 독성 물질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법상 사업주는 유해물질 함유 제품에 대한 정보를 노동자들에게 알리도록 되어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으며, 환기설비미설치는 물론이고 노동자를 위한 방독마스크도 지급되지 않았다. 노동자의 간수치가 올라가고, 일부는 황달 증상까지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장의 유해물질에 의한 직업성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석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본격적인 사실 파악에 나서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죽음에 몰아넣었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충북북부지역은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할까.

충북북부지역 내 세척제를 제조·수입하는 사업장은 2021년 기준 238개소이며, 그 중 세척제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96개소이다. 수도권으로부터 금속제품 관련업종 등 관련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제조업 유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화학물질에 대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안전보건공단에서는 이러한 노동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작업 시 노출되는 화학물질의 정보를 알려주는‘화학물질 노출정보 알리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 홈페이지(http://www.kosha.or.k r/selfcheck/index.do)를 통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해당 화학물질의 시료를 채취해 공단으로 보내면 화학물질 분석결과와 유해성 정보를 신청자에게 알려준다. 사업장에서는 결과를 통해 작업환경 개선 조치에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필요 시 공단에 컨설팅을 요청할 수 있다.

화학물질은 현재 전세계에서 10만종 이상이 사용되고 있으며, 매년 수천종씩 증가하고 있다. 현대의 질병은 이 화학물질로 발생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에 노동자들은 위험을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겐 이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일어나선 안 되기에, 사업주와 노동자의 관심으로 작업장에 안전한 숨을 불어넣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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