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20일 만의 만남인데도 기대만큼 극적이지 않았다. “엄마!” 하면서 와락 품에 안길 줄 알았던 28개월 된 서진이는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할머니 뒤로 숨는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동안 어리광도 없이 잘 참고 기다려준 대견한 아기다. 엄마가 나서서 서진이를 끌어안고 뽀뽀를 하며 동생을 소개한다. 동생이 준 선물이라며 뽀로로 장난감을 건네자 그제야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의 모습이 낯선지 비눗방울 총을 가져와 쏘아댄다. 아기에게 그러면 안 된다 해도 소용없다. “엄마가 아가 맘마 주고 나면 서진이도 안아 줄 거야. 서진이가 조금만 기다리면 돼.” 하자 이내 총쏘기를 멈추고 제 놀잇감을 가지고 논다.

갓난아기가 젖을 먹고 트림을 하는 동안 우리는 아이와의 약속을 깜빡한 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왠지 조용하다 싶어 서진이를 찾아보니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시무룩하다. 응가를 해 놓고는 아빠도 할머니도 모두 거부한다. 어찌나 미안한지 기분을 풀어주려 욕실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게 했다. 연신 한 곳에만 비눗방울 총을 쏘아대는 폼이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만 나가자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엄마가 밖에서 서진이 기다리고 있는데?”

하자 그제야 욕실에서 나와 엄마부터 찾는다.

“엄마 없네?”

두려움이 역력하다. 고 작은 가슴에 자꾸만 멍이 든다. 상황을 눈치챈 엄마가 ‘까꿍’ 하며 나타나는 바람에 사태는 가까스로 수습되었다. 동생과의 첫 만남이 얼마큼 충격일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민감하다. 할머니가 되고 보니 아이의 마음이 눈에 보인다.

내가 둘째를 낳았을 때는 큰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몰랐다. 새로 생긴 동생의 존재를 알려주려고만 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가 안방 문을 열어보고는 휙 하고 문을 닫는 표정이 절망이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 늘 동생을 안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짜증으로 제 마음을 표시했다.

사사건건 요구하는 것도 많아졌다. 여전히 눈치를 못 챈 초보 엄마는 변한 아이의 모습이 힘들어 야단치기 일쑤였다. 아이가 받을 상처보다 눈앞에 보이는 신생아 돌보기와 가사일 등 내 할 일에만 바빴다.

요즘은 아빠에게도 출산휴가란 게 있지만 그때는 일찍 귀가만 해 줘도 감지덕지였다. 득남 턱을 낸다고 술이 곤드레 되어 들어오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니 도우미도 없이 산모가 무슨 정신이 있었겠나 싶지만 그래도 큰아이에게 갖는 미안한 감정은 평생 지울 수가 없다.

아이가 받았을 상실감과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어린 것이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돌이킬 수 없는 그때의 미련함을 생각하면 어미의 마음은 늘 끓는 물에 잠긴 스웨터처럼 쪼그라든다.

아직 결혼 전인 큰 아이에게 그땐 엄마가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별것 아니라는 듯 받아넘기며 되레 엄마를 위로한다. “뭘요. 그땐 엄마도 어렸잖아요. 제 여자 친구 또래였을 텐데요.”

애써 태연한 목소리에 어미의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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