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 바르도 대표

나는 대학 때부터 점집과 철학관을 찾아다녔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늘 내 미래가 궁금했던 것 같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살 것인가? 나는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취직은 잘 할 수 있을까? 등등이 궁금했던 것 같다. 물론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결혼을 한 후에도 가끔 무속인이나 철학관을 찾아가 늘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들이 한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직업은 가르치는 일을 하거나 광고 일을 하면 좋을 것이고 돈을 벌려면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의 직업이나 재테크는 이와는 전혀 맞지 않는 방향으로 갔다. 직업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엔지니어와 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재테크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한 고등학교 후배는 유학까지 갔다 온 후 신내림을 받아 무속인이 된 후배가 있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그 후배를 찾아가 내 직장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후배는 내가 직장 생활은 못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또 직장을 들어갔다. 물론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2년도 못 채우고 그 직장을 그만두었다. 1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섯 번이나 직장을 옮겼다.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고 우연히 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재미가 있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그냥 회사 업무니까 했고 그다지 즐거워서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학원강사로 일하다 내가 직접 영어교습소를 차려 운영하기 시작했다. 개원한지 얼마 안 되어서 아이들이 늘기 시작하고 엄마들 사이에서도 잘 가르친다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몇개월 안 돼서 정식으로 학원을 개원했다. 물론 학원 사업도 잘됐다. 그때 갑자기 그때 무속인 후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가르치는 재능이 있고 직장 생활은 못 할 것이라는 말이 딱 맞는 듯했다. 그래서 갑자기 내 사주팔자가 궁금했다.

학원 일이 오전에는 시간이 많은 일이라 오전에 사주 명리를 공부할 곳을 알아보았다. 그 당시 모 대학의 평생학습관에 명리학 강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등록한 후 본격적으로 사주 명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명리학 용어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하지만 나름으로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2년간 공부하다 한계에 부딪혀 잠시 그만두게 되었다. 그 한계란 사주팔자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앞으로 몇 년 후 당신은 직장을 그만둘 것입니다”, 또는 “몇년도에 교통사고를 당할 것입니다” 등등 예측했던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실망감을 안고 몇 년 혼자 공부하다가 다시 일선에서 업으로 하는 술사를 찾아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명리학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즉 명리학은 점이 아니라는 것이고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주 명리학이란 한 개인의 사주팔자를 보고 명리학이란 툴을 가지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상담해 주는 일종의 상담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요즘 나에게 찾아오는 많은 사람은 자신의 미래와 현재의 힘든 상황을 말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길 원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단지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고민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줄 뿐이다. 사주 명리란 자신을 아는 학문이다. 명리학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학문이다. 이것이 내가 명리학을 공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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