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오송중학교 교감

봄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색을 지녔다. 화려하고 눈부시다는 수식어를 아무리 붙여도 부족한 아름다운 봄꽃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형형색색의 꽃들이 앞다투어 찾아왔다.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요동치게 만드는 것은 목련이 아닐까 싶다. 눈이 내리듯 순백의 목련이 아름다운 봄을 그린다. 목련이 가지마다 하얗게 물들면 봄은 드디어 무르익고, 솜털 같은 꽃봉오리가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면 나는 목련에 매료된다.

목련은 다양한 색채만큼 여러 이름으로 불려진다. 우선 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또 꽃봉오리가 맺힐 즈음 북쪽을 바라본다. 다른 꽃들이 해를 따라 남쪽으로 해바라기를 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특이하다. 그래서 북향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실연의 상처로 죽은 여인이 꽃으로 다시 피어나는데, 애타는 그리움으로 사랑하는 이가 있는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목련의 꽃말은 ‘이루지 못할 사랑’이다.

이처럼 못다 이룬 사랑의 슬픔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로 시작되는 박목월의 ‘사월의 노래’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왜 하필 베르테르의 편지일까.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인 베르테르는 로테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로테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실연의 상처로 베르테르는 자살한다. 편지는 로테에 대한 사랑을 절절하게 보여주는데, 베르테르의 섬세한 마음의 결이 목련과 닮았다.

나에게는 목련에 얽힌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 몇 명을 수덕사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목련 그늘 아래에는 인자한 눈빛의 여승이 동자승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따뜻한 봄볕과 순백의 목련을 배경으로 여승과 동자승이 한 편의 영화를 연출하는 듯했다.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날의 추억은 선명하게 남아서 목련이 필 때면 홀로 꺼내 보는 마음속 사진이 되었다. 목련 꽃잎에 여승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그런데 슬프지 않은 낙화가 어디 있겠냐마는, 목련의 낙화를 가장 참혹하다고 한다. 개화의 화려함과 낙화의 처량함이 이토록 극명한 것이 또 있을까. 피천득은 나이 든 아사코의 모습이 시들어가는 꽃 같다며 세 번째 만남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삶의 희로애락을 거쳐 인생의 속살을 알게 된 아사코가 더 아름답지 않을까. 진자리, 마른자리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게 인생이다. 삶의 과정에서 찢기고 밟힌 상처로 늙고 초라해진다. 낙화한 목련은 비록 얼룩진 흉터투성이 몸이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음을 인정하며 선사하는 훈장으로 여기면 어떨까.

얼마 전에 들른 카페에서 목련차가 눈에 띄었다. 목련도 차로 즐기는구나 싶어서 물으니, 주인장은 한참을 설명한다. 목련은 쓰임새도 많은가 보다. 목련차 한 모금을 머금으니 은은하고 알싸한 향기가 입안에 퍼진다. 마침 창밖에 목련이 지고 있다. 이제 벚꽃의 환희로 목련은 잊혀질 것이다. 지고 피는 꽃처럼 인생도 누군가의 빈 자리를 새 생명으로 채워 나간다. 하지만 떠난 자리 쉽게 지우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내 가슴은 봄의 언어로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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