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영의 고전 산책]서천지기(誓泉之譏), 어리석은 맹세
[김치영의 고전 산책]서천지기(誓泉之譏), 어리석은 맹세
  • 충청매일
  • 승인 2022.04.1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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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가

기원전 743년 춘추시대. 정(鄭)나라 무공이 죽자 장공이 제후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며 장공에게 말했다.

“너는 군주의 자리를 계승하였으니 물려받은 땅만 해도 사방 수백 리에 이른다. 그런데 한 배에서 태어난 네 동생은 고작 외진 공성(共城)이나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이래서야 어찌 형제의 의(義)가 있다고 하겠느냐? 나는 단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구나. 단에게 조금 더 넓은 경(京) 지역을 준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구나.”

경 지역은 도읍 신정보다 넓어 신하들이 나중을 우려하여 반대했다. 하지만 장공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어머니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어머니가 자신보다 동생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년 후, 경(京) 지역에서 힘을 키운 동생 단은 신하들이 우려했던 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형을 몰아내고 자신이 정나라 군주에 오르고자 했다. 사병을 이끌고 도읍 신정으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너무도 쉽게 도읍 신정까지 쳐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성안에서 어머니가 크게 호응했기 때문이다. 한편 장공은 동생 단의 반란 소식에 몹시 고민스러웠다. 형제의 일을 창과 칼로 해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후의 자리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 군대를 출전시켰다.

싸움은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단의 사병들은 잘 훈련된 정나라 군대를 이길 수 없었다. 단은 패하여 달아났다. 시골 작은 골방에 숨어 한숨을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패한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반란에 실패했으니 이제 그가 선택할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품속에서 붉은 비단 조각을 꺼냈다. 그것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보낸 반란을 동요하는 밀서였다. 단은 비단을 찢으며 크게 울부짖었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나의 앞길을 망쳤도다!”

하고는 칼로 자신의 목을 세게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그런데 반란을 진압하자 장공의 고민거리는 따로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반란군과 내통했으니 법에 따라 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벌한다는 것은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법에 따라 어머니를 먼 곳으로 유배 보냈다. 그때 장공은 독하게 맹세하며 말했다.

“내가 황천에 가지 않고서는 다시는 어머니를 볼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얼마 후 장공은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맹세 때문에 주저했다. 그러자 신하 고숙이 아뢰었다.

“황천은 땅속이니 땅을 파고 그 속에서 만나시면 됩니다.”

장공이 그 말에 따라 얼마 후 땅속에서 어머니를 만나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서천지기(誓泉之譏)란 황천에 가지 않고는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다는 장공의 어리석은 맹세를 나무란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감정에 치우쳐 내뱉은 말을 맹세로 착각할 때가 있다. 죽기 전에는 절대로 보지 않겠다는 그 헛된 맹세. 부모가 비록 비루하더라도 살아있을 때 만나야 두고두고 후회가 없는 것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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