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그날은 피곤하여 6시 반에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탑선리 골짜기의 찬바람을 가르며 천천히 차를 몰아 영동 체육공원에 도착하니, 테니스 코트에는  이미 꽉 차서 내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되어 다른 회원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발길을 돌리자니 20리 길을 달려서 온 게 억울하고 부아가 터졌다. ‘혹시 오늘 하루 운수가 사나운 게 아닐까?’란 생각과 함께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이 생각이 났다.

‘오늘 하루는 나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마누라를 뿌리치고 인력거를 끌고 나온 김첨지!  손님이 없어서 무일 푼 허탕만 치던 다른 날과 달리 오늘은 억세게 운수가 좋아서 손님이 많은 탓에 3원이나 벌었다. 설렁탕을 배불리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마누라 생각에 한 그릇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오니, 마누라는 싸늘한 시신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 따라 운수가 좋더니만!”라며 울부짖는 김첨지! ‘운수 좋은 날’이 아니라, 운수 나뿐 일을 겪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슬픔과 기쁨, 행(幸)불행(不幸), 실패와 성공이 복합적으로 엮어가는 게 아닐까? 어떻게 사는 게 슬기로운 인생일까? 마음을 슬기롭게 다루는 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관심(觀心)’과 무상(無常)이 정답이다. ‘관심’이란 마음이 마음을 본다는 것이다. 즉 내가 내 마음을 바라볼 수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우리 몸은 마른 나무와 같고, 분노(화)는 불길에 비유된다. 분노의 불길은 일순간 재앙으로 몰아넣는다. 그걸 예방하는 방법이 관심(觀心)이요, ‘관심’을 하면 ‘무상’하게 된다. 

화가 날 때면 혼잣말로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화가 나는 그 마음을 보자!”라고 중얼 거리며 걷는다. 그 날도 천천히 종합운동장을 거쳐 용두봉 예술공원에서 충혼탑까지 올라가서 영동 시내를 조감해 보니, 테니스 게임 하나 못했다고 ‘부아가 난 내 마음’이 한없이 옹졸해 보였고 부끄럽기만 했다. 

그날 오후엔 영동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조치원역에서 하차하여 청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혹시 교장 선생님 조치원역 앞에 계신 것 아니세요?”라며 교육부에 근무하는 김 연구관이 전화했다. 그는 능력이나 인품 면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다. “선생님 역앞에서 기다리세요.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라며 굳이 “청주까지 모셔다 주겠다”고 고집한다. 그는 내가 충북고 교장시절 새내기 체육교사였다. 차안에서 전화를 하는데 프로배구 심판을 보는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그 친구는 배구 감독으로 지내다가 지금은 프로배구 심판으로 근무하여 TV중계 화면으로 볼 수 있다. 

우리들은 건배사로 ‘주봉지기면 천종소라(酒逢知己면 千鍾少라 :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면, 천 잔의 술이 오히려 적다)’라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글귀를 여러 번 연발했다. 글귀와 같이 그날은 소주에 맥주를 폭탄으로 여러 잔 마셔도 취하질 않았다. 모처럼 운수 좋은 날이었다.

20리 길을 달려 테니스도 못치고 허탕 친 그날 아침에 관심(觀心)과 무상(無常) 수행을 통하여 ‘전화위복(轉禍爲福)’을 체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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