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대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 / 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

만난사람 = 함우석 사회부장

대한민국사회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나. 21세기 첨단시대가 펼쳐지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심각한 갈등과 분열의 위기에 놓여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질서와 가치관 등이 뒤섞여 혼란스럽기만 하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은 해방 후 60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올바르게 가는 지에 대해선 불안감과 의문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충청매일는 창간 6주년을 맞아 이 시대의 석학, 안병욱 숭실대학교 명예교수(철학자)의 시각을 통해 국가권위 실추와 사회갈등 원인, 국가 좌표 설정 등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해방 60년을 맞았지만 심각한 갈등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논쟁만 있고 접점은 없습니다. 마찰은 있는 데 통합의 신호가 없습니다. 국가 수반인 대통령의 권위마저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가 권위 회복에 대한 방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질서가 없고, 나라의 권위도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대통령, 국회, 부모, 자식 등 너나 할 것 없이 권위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국가질서의 혼란은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론이 도출되는 다원 사회는 갖가지 이론을 주고받으며 옳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생각하면 옳은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민주사회는 조금 시끄럽지만 서로 견제하고 양보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사회의 혼란과 갈등이 심화된 데는 여론 주도세력이 없다는 점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주화를 주도한 대학생이나 재야인사 같은 선각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NGO 등이 한 때 중심세력이 됐으나 최근 도덕성을 떨어트리는 몇몇 사례가 불거지면서 그들의 권위도 크게 실추됐습니다. 국갇사회 차원의 갈등해소 대책이 있다면 피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민운동가들의 신용이 무너지면 국가의 신용도 잃게 됩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시민운동가들도 살아납니다. ‘무신불위(無信不位)’, 신용을 잃으면 설 땅이 없어집니다. 신용은 사회생활의 가장 큰 도덕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신용을 회복해야 합니다. 국민 개인도 각자의 신용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용이 국가존립의 기본이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용이 떨어지는 곳이 정치 분야입니다. 서로를 속이지 말고 신용을 회복하는 길만이 사회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은 해방 후 60년 동안 많은 성장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질서와 가치관 등이 뒤섞여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대한민국의 좌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혼란스런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방안을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두 축으로 하는 국가입니다. 정부의 모든 정책이 이 두 축에서 벗어나선 안됩니다. 미국 예일대 폴 케네디 교수는 대한민국이 세계 중심에 서기 위해 필요한 3가지를 지적했습니다. 수준높은 민주주의와 수준높은 경제생활, 그리고 수준높은 도덕생활입니다.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했습니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국민이 쓸만한 물건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다 팔고 국가가 부패하지 않고 국민 개개인이 책임감을 갖고 생활할 때 건강한 나라가 됩니다. 사회를 개조하고 싶으면 자신부터 개조해야 합니다.”

▶정치인의 역할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지금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절하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치인들이 제 역할을 하고 정당이 제대로 설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등고망원(登高望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높이 오르면 멀리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지도자는 50년 후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국가를 위해 멀리 봐야 합니다. 건강한 국가가 되기 위해선 개인의 이익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사람입니다. 또 당파의 이익보다 국가이익을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이제 당파의 노예가 돼선 곤란합니다. ‘당(黨)’이란 한자에는 ‘검을 흑(黑)’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당파에 휩쓸리게 되면 사람도 검게 돼 버립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남북관계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과거처럼 무조건적 통일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북한을 국가대 국가로 인정하면 1민족 2국가의 영속화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할 남북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인지요.

“대한민국을 미국·소련·일본·중국 등 4강 세력의 발길에 차이는 약한 축구공이라고 묘사한 책이 생각납니다. 바위를 발로 차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위가 단단하고 강하기 때문입니다. 남북관계 역시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게 좋습니다. 대한민국의 두 축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70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형의 입장에서 북한을 설득해야 합니다. 남북한 모두 서로 각자의 길에서 국력을 기르면 통일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날이 올 것입니다.”

▶최근 천정배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발동해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국민들 사이에선 ‘국가정체성이 무엇이냐’는 물음과 색깔론이라는 주장이 대결구도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관의 말은 신중해야 합니다. 즉흥적이어선 안 됩니다. 나라의 무게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전에 한 말을 번복해서도 곤란합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여야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합니다. 장관이 당의 입장에 서면 공정한 판단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당의 입장이 아닌 국가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판단하고 말해야 합니다.”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이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노철학자로서 이 시대의 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입니다. 이제부터는 세계적인 교양, 세계적인 안목, 세계적인 사고방식을 추구해야 합니다. 50여년 전에 이미 ‘하나의 세계(one world)’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그게 현실이 됐습니다. 자신이 큰마음을 갖고 세계시민의 입장에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한국인도 이제 민족적 자신감을 갖고 세계인이 돼야 합니다.”

▶끝으로 학계와 사회의 원로로서 후학과 사회지도층 등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청년의 죽음은 곧 나라의 죽음입니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중요합니다. 국가를 끌고갈 사람들은 바로 젊은이들입니다. 큰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선 참되고, 거짓말을 해선 안됩니다. 인격이 최고의 힘입니다. 또 자주정신과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명감이 필요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전진할 때 우리 모두가 희망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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