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 대입제도 - 학교는 피곤하다
해방초기 문맹퇴치에 교육정책 집중
1950년대 권력층 입맛대로 변경 수모
학력고사대치 수능시험 1994년 첫선

“또 바뀌었어?” 해마다 대입 수험생과 수험생 부모들이 하는 자조의 말이다.

최근 대학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대학가기가 쉽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흔히 말하는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싶은 수험생이나 자녀를 그 곳에 입학시키고 싶은 학부모의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학에 대한 사회적 집념은 도를 넘었다는 자기비판에 직면하면서도 크게 개선되거나 그렇다고 개선하기 위한 국민적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교육당국의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대학의 학생선발 방식은 광복 이후 60여년간 무려 15차례나 바뀌었지만 수험생들의 입시지옥은 여전하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의 평균 수명은 4년. 변화된 입시제도를 큰 줄기로 나눠 정리해봤다.

1. 대학별 단독시험제(1945∼1953년)

이 시기는 일제치하에서 해방된 특수한 상황이어서 새로운 학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교육기관 증설이 시작됐으나 국민적 관심이 문맹퇴치에 집중돼 대학입학 전형에는 무관심했다.

따라서 모든 대학입시에 대한 전권을 각 대학이 쥐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무자격자의 입학허가, 부정입학 등의 문제점이 발생했다.

2. 연합고사와 대학별 본고사 병행(1954년)

무적격자의 대학입학을 걸러내고 대학입시제도의 공공성을 살리기 위해 도입된 연합고사와 대학별 본고사 병행은 일부 권력층의 자녀가 연합고사에 탈락했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시행 원년에도 효력을 발행하지 못하고 백지화됐다.

대학의 부조리를 제거하고 대학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정치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것이 발단이 돼 퇴출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제도인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3. 대학별 단독시험제 및 무시험제(1955∼1961년)

연합고사가 자유경쟁체제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비판과 더불어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내신성적 반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대학별 단독시험제와 일부 무시험제가 실시됐다. 내신반영이 처음으로 이뤄진 것이다.

전형방법은 입학정원의 일부 또는 전부를 내신성적으로 선발하는 무시험제와 대학별 고사성적과 내신성적을 합산했고 보조 전형자료로 신체검사와 면접이 첨부됐다.

내신반영이 제도화됨에 따라 당시 문교부는 대학진학자를 위한 사정자료 작성요령을 시달했고 고등학교의 학적부가 생활기록부로 바뀌게 됐다.

이 때는 특별전형을 실시, 여자와 제대군인에 한해 정원의 10% 범위서 초과모집을 허용하기도 했다.

4.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1962∼1963)

5·16군사정부의 등장으로 입시제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졌다. 대학수학능력자를 선별,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하기 위해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가 실시됐다.

이 시기에 실업교육의 진흥이 눈에 띈다. 국가경제발전이라는 기치 때문이었다. 1962년 실업고 출신자가 동일계열로 진학할 경우 정원의 30%에 해당하는 특전을 부여, 전형했으며 특기자 전형은 필답고사 대신 서류전형으로 실시됐다.

그러나 1963년에 국가고사만 대학입학자격으로 인정됐다. 대학의 선발전형이 국가의 통제에 놓이게 됨으로 인해 대학 자율성에 대한 침해 논란이 일었다.

5. 대학별 단독시험(1964∼1968년)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제에 대한 대학 자율성 침해 논란과 함께 교육 기회균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여론으로 1964년 대학별 단독 고사제로 전환됐다.

정부는 대학입학시험의 공공성 차원에서 최소한의 지침만 마련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일부 대학에서 매년 입시과목을 변경함으로써 고등학교의 진학지도 및 입시준비에 많은 혼란을 초래했다.

결국 입시과목 위주의 교육으로 고교 교육의 비정상화를 초래했다. 특히 이 때부터 일류대학의 집중화 현상으로 이른바 학벌주의 형성의 사회적 토대가 됐다.

6. 예비고사와 대학별 고사 병행(1969∼1980년)

대학별 단독시험의 각종 부작용으로 대학입시 부정행위와 교육의 질적 향상, 대학의 선발권 보장 등을 위해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대학별 고사를 병행하는 입시제도가 등장했다.

전형방법도 매우 다양해 예비고사 성적만 반영, 예비고사 성적과 고교 내신성적 합산 반영, 예비고사 성적과 대학별 고사성적 반영, 예비고사와 고교 내신성적 및 대학별 고사성적 반영 등이다.

예비고사에 합격해야 각 대학별 본고사 응시자격이 주어졌다. 이로 인해 대학의 서열화가 더욱 심화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이 시기 국어와 영어, 수학 중심의 대학별 본고사 과목 채택은 과외열풍을 일으켰고 이들 과목을 제외한 현장과목의 파행 운영 원인이 됐다.

7. 예비고사와 내신성적 병행(1981년)

‘5공화국’의 출범 모태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1980년 7월30일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 방안’이라는 교육개혁을 단행하면서 대학입학 예비고사 성적 50∼80%와 고교 내신 성적 20∼50% 반영을 채택했다.

이 때 ‘선시험 후지원’ 형태의 전형절차로 대학들을 전·후기로 나눠 모집했으며 전형일자가 같은 대학이라도 무제한 복수지원이 가능했다.

특징은 대학별, 학과별 모집을 했고 졸업정원제를 전제로 정원의 30%를 추가 모집한 것이다. 지역간·학교간의 격차를 무시한 동일 수준의 내신성적과 고교내 극심한 경쟁, 대학의 학생선발에 대한 자율성 제한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8. 학력고사와 고교내신 병행(1982∼1985년)

1982년엔 대학입학 예비고사가 대학입학 학력고사로 전환됐다.

당시 문교부는 1981년 2월부터 3개월 동안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 전·후기 구분, 고교 내신성적과 학력고사 성적 각각 30%, 50%반영 및 20% 학교재량 일임 등 내용을 골자로 한 대입방법을 결정했다. 내신 성적 산출도 고교 전 학년 성적을 근거로 했다.

학력고사 성적과 내신성적의 기계적 합산에 의한 점수로 당락을 결정함에 따라 대학의 학생선발권이 위축됐고 수험생들의 극심한 눈치작전과 배짱지원이라는 문제가 돌출했다.

9. 학력고사와 내신성적·논술고사 병행(1986∼1987년)

정부는 1986년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각 대학별로 논술고사를 실시토록 했다.

종전 학력고사에 나타난 암기위주의 객관식 시험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탈교과적·범교과적 성격의 논문식 시험을 통해 작문력과 창의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입학성적의 10% 이내서 성적이 반영됐다.

이 제도가 도입된 후 긍정적인 측면보다 고교생의 입시부담이 가중되는 등의 부정적 측면이 많다는 여론이 일어 2년만에 이 제도는 폐지됐다.

10. 학력고사·내신성적·면접병행(1988∼1993년)

눈치작전, 배짱지원 등이 대입제도의 고질병으로 지적되자 당시 정부는 ‘선지원 후시험’ 등의 대입 방안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졸업정원제 폐지, 논술고사 폐지, 학력고사의 과목별 가중치 적용 등을 채택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선지원 후시험 지원방식 이외에도 주관식 출제, 면접고사 성적 반영, 대학별 자율적인 과목별 가중치 적용, 실업 및 제2외국어 대학 자율 지정 등이 있다. 내신성적의 산출은 과거 15등급에서 10등급으로 조정됐다.

이 대입제도도 그러나 선지원 후시험에 따른 대학과 학과의 선택기준 부재로 고교에서 진로지도에 어려움을 겪었고 암기위주의 입시교육 문제를 개선하지 못했다.

11. 수능시험·고교내신성적·대학별고사 병행(1994∼1996년)

1994학년도에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새로운 국가고사형태로 대치됐다.

전형에서 고교내신성적이 40%이상 의무적으로 반영되는 것으로 상향조정됐고 내신등급도 다시 15등급으로 확대됐다. 면접이나 신체검사, 인성검사 등은 각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반영여부나 비율을 결정토록 했다.

1995년부터는 수학능력시험을 인문, 자연, 예·체능 등의 3개 계열로 나눴다. 야간학과 설치대학의 산업체 특별전형이 확대됐으며 1996년부터는 농어촌학생 특별전형, 특수교육대상자의 특별전형 등의 제도가 도입됐다.

이 시기 대학별 입시일자를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는 등 대학 자율권이 넓어졌으나 다양해진 전형방법은 수험생들에게 과도한 시험부담을 안겨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12. 대학자율·논술·면접·특별전형·수시모집(1997∼2007년)

학생을 연중 모집하는 수시모집제도가 1997년 첫선을 보였다. 이후 2002년, 올해 수시모집이 확대되는 형태로 대입제도가 바뀌었지만 대학자율, 논술, 면접, 특별전형, 수시모집의 큰 틀은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수능시험과 교과 중시의 학교생활기록부 등 학력위주의 전형자료가 대학의 주 평가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능시험이 석차위주로 반영될 수밖에 없어 사교육비 부담은 가계의 심각한 걱정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이는 곧 공교육 불신으로 연계돼 이에 따른 해결책 마련이 큰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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