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한 달은 족히 지난 것 같다. 뜨겁고 요란하게 전국을 달궜던 20대 대선이 끝난 지 겨우 1주일, 그런데 한 달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어느 때 보다 근소한 차이의 득표율이라는 기록은 이긴 쪽은 안도의 숨을, 진 쪽은 안타까움과 분한 마음에서의 긴 한숨을 가져왔다. 대선에 직접 관련된 정치과 사람들뿐만 아니라 반으로 갈라진 국민은 서로의 마음을 어떻게 다시 화합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이번 대선은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올 수 있어? 라는 비난의 의문이 양쪽 모두 컸다. 물론 대통령이라는 직무가 흠결이 없는 성인군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도덕적인 삶을 살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잘못이나 죄를 짓기도 하고, 나의 선택이 사회적 문제를 더욱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전엔 사회적으로 허용됐던 행동이 지금은 금지돼 비난받기도 한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나 이미 결정된 당선자에 대하여 지나친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의 삶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주권자로서 우리 마음에도 상처를 주고, 우리끼리 편을 가르는 원인이 된다. 선거에 진 47.8%의 국민은 더욱 마음의 상처와 분노가 클 것이다. 이렇게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면 시간이 더디 가고, 일주일이 한 달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권이야 그들이 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서 마음을 추스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일반 국민은 어떻게 마음을 달래야 한단 말인가? 매일 쏟아지는 뉴스와 SNS 소식을 보면서 치솟아 오르는 불쾌하고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고난이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드는 분노와 비난의 마음은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을 때 더욱 크다. 가만히 길을 가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한 대 맞은 것처럼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일은 그런 황당한 경우보다는 문제의 원인에 나도 포함돼 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패라고 하는 부동산까지 나 자신과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상대나 정부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내 마음의 상처는 더욱 커진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개인적 갈등이든 집값이라는 사회적 갈등이든,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자녀의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를 만나보면 여지없이 부모의 문제가 우선이다. 직장에서의 갈등 또한 따지고 보면 나의 ‘비합리적인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상사라면 이래야 돼. 조직의 장이라면 이런 결정을 내려야 돼. 명색이 박사라는 연구자는 이렇게 말해야 돼’라는 나만의 비합리적 기준이 있고, 이 기준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갈등의 불씨가 자라난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우리나라 집값의 안정을 위해 내 집값이 떨어져도 괜찮다’라고 흔쾌히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것은 개인의 욕망이 여론화되어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까닭이다. 부동산은 어떤 정부가 와도 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처럼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의 결과를 남의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아니면 나의 잘못도 있음을 인정하느냐? 완전한 치유는 어렵겠으나, 그나마 20대 대선에 내 마음을 달래는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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