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 100년 한(漢)나라 말기, 화제(和帝)는 장제(章帝)의 서자이며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출신 성분으로는 도저히 황제에 오를 수 없었다. 그런데 9살 때 부친이 죽자 뜻하지 않게 황제에 올랐다. 알고 보니 이는 나이 어린 황제를 대신해 두태후(竇太后)가 정권을 잡기 위한 치밀한 계략이었다.

수렴청정을 맡은 두태후는 조정의 높은 벼슬자리는 모두 친정 식구들로 임명해 정치를 독점해버렸다. 기존 신하들은 실권도 없고 그저 허울뿐인 꼭두각시에 불가했다. 두씨 집안은 이 기회를 틈타 권력을 전횡하거나 황실의 재산을 치부하기 시작했다. 2년 만에 고을마다 최고 갑부는 모두 두씨였다. 부정부패가 이렇게 만연해도 감히 나서서 간언하는 신하가 없었다. 이는 두태후가 겉으로는 온순하고 예의 바른 여인이지만 자신의 결정에 불복하는 신하에게는 악랄하고 악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혀를 함부로 놀리면 그 목이 언제 떨어질지 나는 모르는 일이오.”

그러니 신하들은 그저 입을 봉하고 분부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화제의 모친인 양씨가 두태후를 몰아내기 위한 모략을 꾸몄다. 하지만 사전에 비밀이 발각되어 양씨는 처참하게 살해되고 말았다. 이후로 10년 동안 두태후에게 반기를 드는 신하가 없었다.

화제가 성인이 되자 모친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로 두태후에게 원한을 품었다. 이 무렵 화제는 신하 정중을 총애하였다. 그는 환관의 신분임에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황제 폐하! 잘못된 일은 그 처음에 손을 써서 바로 잡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걸 알고도 그냥 놔두면 나중에는 수습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두씨 일가가 국정을 농단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전횡하고 황실의 재산을 함부로 빼돌리니 이래서는 나라가 망하고 말 것입니다. 서둘러 그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구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옛 황제의 권한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화제는 이때부터 두씨 섬멸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두씨들이 이를 눈치채어 도리어 화제를 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선수를 친 것은 화제였다. 어느 날 대장군 두헌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그 자리에서 대장군을 폐하고 인수를 되찾았다. 그리고 자살을 명했다. 두씨의 우두머리인 두헌이 어이없이 죽자 두씨 세력은 급속히 무너졌다. 조정에서 벼슬을 하는 두씨들은 단번에 일망타진되었다. 이어 두씨 일가와 그 친척들을 모두 잡아들여 참수하였다. 두씨 섬멸 계획을 주도한 환관 정중에게 나중에 크게 상을 내렸다. 화제는 황제의 실권을 되찾았으나 이후에도 중요한 일에는 정중에게 의견을 물어 결정했다. 이것이 화제 이후에도 관례가 되어 점차 환관들이 정치에 개입하여 한나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이는 ‘후한서’에 있는 이야기이다.

두점방맹(杜漸防萌)이란 처음부터 싹이 나오지 않도록 막는다는 뜻이다. 나쁜 조짐이 보였을 때 즉시 제거하여 피해를 막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지혜로운 자는 나쁜 것을 미리 가려내니 삶이 편안하고, 어리석은 자는 나쁜 것이 무엇인지도 몰라 결국 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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