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개+사과(沙果)가 한창 논란이 되었다. 윤 후보 본인이 전두환을 옹호한 발언에 대해 사과(謝過)한다는 것이 ‘자식같이 생각하는 반려견한테도 사과’한다는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논란과 비판은 쉽게 식지 않았다. 처음 언론에서 개사과를 접했을 때, 설마 그런 의도였을까? 지나친 오해는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의 윤 후보 부인과 측근들의 행태를 보니 어쩌면 ‘사과(謝過)는 개(犬)에게나 줘버려’라는 해석이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과(謝過)는 받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방식과 시기를 맞춰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적절하지 못했다.

최근 윤 후보는 부인(夫人)과 관련한 많은 논란에 대해서도 “아내와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미투 피해자들에게) 사과(謝過)드린다는 입장을 이미 서면으로 얘기했고”라고 말한다. MBC방송 직후 사과를 한 타이밍은 적절했지만, 역시나 방식에 문제가 있다. 아내와 대화할 시간이 없는 것과 논란의 쟁점과는 관계가 없다. 사과(謝過)를 서면으로 했으니 더 이상 말로써 직접 사과를 요구하지 말라는 태도는 오히려 듣는 이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밖에 없다. 개사과(沙果)처럼 안 하느니만 못하다.

잘못에 대해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과를 할 때는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당사자에게 직접, 이유나 변명을 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후 상대가 용서를 하고 나서 잘못에 대한 이유를 물을 때, 겸손한 태도로 설명해도 늦지 않다. 물론 쉽지는 않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를 때도 있다. 특히 부부 사이에 뭘 잘못했는지 몰라서 당황할 때가 종종 있지만, 필자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일단 사과(謝過)를 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윤 후보의 개사과(沙果) 사진에 묻혀버린 더 큰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이제는 용서의 기회조차 사라진 전두환이다. 국민이 윤 후보의 개사과에 화가 난 것은 그 행위 자체도 있지만, 그 뒤에 전두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지난해 사망할 때까지 5·18에 대해 한 번도 잘못을 시인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혹자는 40년이나 지난 일을 왜 아직도 얘기하느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참 못됐다.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란 말인가? 용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40년이 넘게 5·18 유족들과 국민이 분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용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실수를 한다. 그래서 사과(謝過)와 용서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언뜻 훌륭한 행동처럼 보일지 모르나,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잠깐의 위장된 평화는 가져올지 모르나, 앙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가짜 평화는 사실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원들간에 갈등이 있을 때 누군가 이를 중재하지 않고, 서로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끝까지 갈등 관계로 남아 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만다. 결국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하지 못한 자, 모두에게 고통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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