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613년, 제나라 환공이 죽자 자식들 간에 권력 암투가 벌어졌다. 그 싸움에서 이긴 셋째아들이 제후에 오르니 바로 소공이다. 얼마 후 소공이 죽자 그 아들 강사가 자리를 잇고자 했다. 하지만 소공의 동생 강상인이 반란을 일으켜 조카 강사를 죽였다. 그리고 큰형 강원을 찾아가 말했다.

“내가 조카를 죽인 것은 모두 형님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형님이 제후의 자리를 계승하시는 것이 순리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강원은 즉각 거절했다.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 나는 너를 제후로 섬길 수 있지만 너는 나를 섬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 일에 나를 끌어들이지 마라. 나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

강원이 그때부터 병을 핑계로 외부 사람을 일절 만나지 않았다. 그러자 강상인이 제후의 자리에 오르니 바로 의공(懿公)이다.

이전에 의공은 대부 병원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제후에 오르자 죽은 병원의 무덤을 파내어 그 시체의 다리를 잘라 복수하였다. 그런데 병원의 아들 병헐이 의공의 의전을 담당하는 비서로 일했다. 그는 의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신의 아버지는 천수를 누리다 돌아가셨습니다. 죽은 뒤에 형벌을 받았지만 그건 가벼운 일입니다. 소신은 조금도 의공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제후에 오른 이후 의공은 많은 미인을 소유하였다. 그런데 신하 염직의 아내가 뛰어난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자 그만 여색이 발동하고 말았다.

“내가 그대의 아내를 한번 만나 볼 수 있겠소?”

그 한 마디에 염직은 어쩔 수 없이 아내를 궁궐에 들여보내 의공의 시중을 들도록 했다. 하지만 조금도 불평하는 기색이 없었다.

“의공께서 날마다 귀한 것을 선물로 주시니 어찌 영광이 아니겠는가?”

어느 날 의공이 더위를 식히러 물가에 나갔다. 이때 병훨과 염직이 따라나섰다. 의공이 목욕 후에 잠이 들자 두 사람은 서로의 억울한 일을 토로하였다.

“힘이 모자라 지금까지 분한 마음을 참았을 뿐이네.”

하고는 주변의 내시와 여자들을 내보내고 의공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의공이 죽자 제나라 원로들이 모여 논의하였다.

“의공을 시해한 두 사람을 처벌하여 후세에 경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말했다.

“의공은 선군을 죽인 사람이오. 우리가 벌하지 못해 저들이 대신 벌을 준 것이오. 그런데 우리가 무슨 명목으로 저들을 성토한단 말이오!”

병훨과 염직은 그 틈을 타서 가족들을 데리고 초나라로 피난하였다. 얼마 후 환공의 자식 중에 가장 인품이 좋은 강원을 제후로 추대했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있는 이야기이다.

명정언순(名正言順)이란 명분이 정당해야 하는 말이 사리에 맞는다는 뜻이다. 남의 작은 죄는 처벌받아야 마땅하고, 자신의 가족이 저지른 큰 죄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공정과 정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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