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조선시대 목판본을 보면 오늘날 우리 글과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판본에는 띄어쓰기도 없고, 한자도 없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언문만 있습니다. 우리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조리 정연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홍길동전’이나 ‘춘향전’ 같은 것을 보면 정말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있습니다. ‘글발’에서 변한 ‘글월’이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글들이 발을 드리운 듯이 세로로 서서 우리의 눈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관행은 신소설까지 이어집니다. 이인직의 ‘혈의 누’도 신문에 연재할 때는 한자말 옆에 한글로 토를 달아서 설명해주었는데, 막상 단행본으로 출판될 때는 적당한 길이의 띄어쓰기와 함께 한자가 다 사라지고 한글로만 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일반 백성이었기 때문에, 한자가 들어갈수록 팔리지 않는 시장의 논리에 따른 것입니다.

이처럼 문자가 지배층의 통치 수단이면서, 시장의 논리에 따르는 수단이기 때문에, 한자는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의 변수가 생깁니다. 대한제국이 망하면서 한문은 사라져야 하고, 시장의 논리에 따라 한글이 표기 수단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데, 일본어와 영어가 이런 혼돈 앞에 놓인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독립신문’은 영어라는 거울에 우리말을 비추고, ‘황성신문’과 ‘매일신문’은 일본어라는 거울에 우리말을 비추어봅니다. 이러다 보니, 신구 세대가 뒤섞인 혼란기에 한자에 향수를 느끼는 세력들이 일본어라는 거울을 보고 국한문혼용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한문혼용의 큰 뜻은, 한문으로는 시대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언문으로 표기 수단을 바꾸면 됩니다. 만약에 한반도에 서구 열강이 없고 순수하게 우리만 있었다면 이 변화는 아주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을 모델로 삼아서 우리나라를 뜯어 고치려는 사람들은 각자 제 성향에 맞는 방법을 찾아 적용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 형태의 표기법이 국한문혼용이라는 괴물입니다. 제가 국한문혼용을 괴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시대의 이념에도 안 맞고, 언어의 경제성에도 맞지 않으며, 민족의 이념에도 맞지 않는 해괴망측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한 표기 수단이 국한문혼용입니다.

이 국한문혼용이라는 괴물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신문을 비롯하여 꼰대들이 즐겨 쓰는 모든 것에서 꼰대 짓을 합니다.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신문에 한자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했다가 몇 달만에 되돌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기 콤플렉스에서 나온 결단이기는 합니다만, 박정희 대통령의 결기와 고집을 볼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한글전용 쪽에 섰던 분들은 박수치며 환영을 했지만, 한문을 그리워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아서 결국은 아직까지도 국한문혼용은 우리 시대의 공통문자이기도 합니다. 정말 한심합니다.

하지만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한문은 제2외국어가 되었고, 새로운 세대들이 영어보다 더 어려워하는 문자가 되었습니다. 한자가 하나 들어가면 구독자 수가 몇 백 명씩 줄어드는 현상이 인터넷에서 벌어졌고, 결국은 인터넷에서는 한자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종이에서는 아직도 한자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한자로 꼰대 짓을 하는 세대의 마지막 뻘짓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굳이 독려하지 않아도 한자는 우리 생활에서 사라질 것임을 젊은 세대들의 반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한자는 학자분들이나 쓰는 언어로 자리 잡으면 됩니다. 굳이 일반 백성들까지 나서서, 자신들을 옥죄던 지배층의 언어를 일소처럼 짊어지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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