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틈틈이 탑선리 고향집에서 아랫마을 예전리까지 왕복 십리 길을 산책한다. 지난 일요일에도 그럴 작정으로 집을 나섰다. 동구 밖을 지나니 ‘굴뱅이’라는 골짜기로 가는 산길이 보였다. 그곳에는 조상의 넋이 깃든 선산이 있다. 문득 새해맞이 부모님과 조상님들을 참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고갯마루를 헐떡거리며 올라서니 제일 먼저 부모님 산소가 눈에 들어온다.

부모님 참배를 마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불꽃같은 정열로 삶을 불태우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혼신을 다하다가 지난 시월 세상을 뜬 ‘순지’의 묘를 찾았다. 학창시절 그녀 집에서 숙식하면서 단짝이 되어 행복했던 추억이 생생하다. “화가, 작가, 뮤지칼배우, ‘별을 쥐고 있는 여자’ 김순지 여기에 영면하다”란 묘비명(墓碑銘)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9대조 산소를 비롯하여 열여덟 분의 산소를 다 참배하자니 2시간은 족히 걸렸다. 마무리하고 발길을 돌리려 하니, 십여 년이 지나도록 참배하지 못했던 사촌 형님의 산소가 생각이 났다. 칡넝쿨과 싸움해 가면서 ‘윗시앙골’까지 내려가니 양지바른 곳에 산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내게 배움에 눈을 뜨게 하고, 인생에 길을 열어준 스승과 같은 형님이었다.

체격은 비록 작지만 힘이 장사였던 형님은, 부락에선 힘이 가장 세다는 ‘조현이’와 다리난간에서 팔씨름을 했다고 한다. ‘조현이’가 팔씨름에 지자 분을 참지 못하여 형님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 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전신마비로 6개월 만에 형님은 세상을 떴다. 슬하에 딸만 다섯을 남겨두고, 마흔 넷에 한 생을 허무하게 마감했다. 숨 거두는 순간까지 하도 많이 울어서 베개가 흠뻑 젖었다고 한다. 가해자(?) ‘조현이’도 일생을 망쳤다. 일인장락(一忍長樂)이라! 한 번 참지 못한 과보가 두 사람의 일생을 망치고 말았다.

참배를 마치고 다시 칡넝쿨을 헤치면서 능선까지 다시 무사히(?) 올라오니, 아차! 핸드폰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발목까지 쌓인 낙엽에 묻혀서 찾을 길이 막막하였다. 당초 예정대로 편안하게 산책만 했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러나 조상들께 인사드리러 온 것은 오히려 자랑스럽지 않은가? 잡다한 생각들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문득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란 말이 떠올랐다. 공자님도 부처님도 예수님까지도!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 감정에 휩싸여 근심 걱정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롭히는 것이 ‘두 번째 화살’이다.

“그렇다 두 번째 화살만은 맞지 말자!”라며 마음을 가다듬고 칡넝쿨과 낙옆을 헤치면서 차근차근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출발했던 부모님 산소까지 발자취를 더듬어 되돌아 왔지만 찾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는 없다. 한 번 더 찾아보자!’며 처음부터 다시 발길을 더듬어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고진감래랄까, 지성감천이라고 할까?! 가파른 바윗길 틈에서 드디어 핸드폰을 찾고 말았다. 너무 기뻐서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야호!’

임인년 신년 벽두부터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라는 경구(警句)를 실천함으로써! 소중하고 감동적인 체험을 했다. “호랑이해에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은 바짝 차리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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