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550년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떨어져 제후들은 천자를 우습게 여겼고 조회에 오지도 않았다. 영왕이 즉위하여 높은 누각 곤소대(昆昭臺)를 지어 이전의 영광을 되찾고자 했다.

이 공사는 10년 동안 이어졌다. 그로 인해 많은 노역이 동원되자 백성들이 크게 원망하였다. 하지만 곤소대를 짓고 보니 그 화려함과 높이가 정말 대단했다. 영왕은 이 정도면 제후들이 깜짝 놀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주나라를 찾아오는 제후는 여전히 없었다. 왕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장홍(弘)이라는 무당이 영왕을 뵙고자 찾아왔다.

“소신이 신통력과 법술을 부려 천하 제후들이 주나라를 찾도록 하겠습니다.”

신하들은 웅성거렸다. 외모가 수려하고 말솜씨도 유창한 자가 나타나 해법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운 소리겠는가. 영왕이 해법을 묻자 장홍이 대답했다.

“왕궁 뜰의 나무마다 제후들의 이름을 적은 팻말을 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운 후에 팻말에 매일 2번 활을 쏩니다. 그러면 며칠 내에 그 이름에 해당하는 제후가 병이 들어 천자께 잘못을 빌러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가 없었다. 마침 진나라 평공이 이 소문을 듣고 신하 숙향을 불렀다.

“장홍이라는 자가 내 이름을 적어 둔 팻말에 활을 쏘아 나를 죽이려 한다지. 참으로 건방진 놈이도다. 그대가 가서 장홍을 제거하라.”

숙향이 주나라를 방문하여 영왕 앞에서 장홍을 한껏 치켜세웠다.

“장홍은 천하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신통력이 대단한 무당입니다!”

연회를 마치고 숙향은 수레를 타고 돌아갔다. 그런데 신하들이 숙향이 앉았던 자리에서 떨어진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그런데 내용이 놀라운 것이었다.

“진나라 주군께 아뢰어 주십시오. 약속대로 일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당장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면 주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영왕이 보고를 받고 크게 분노하였다.

“당장 장홍을 잡아와 거열형에 처하라!”

거열형이란 사람의 팔다리를 네 방향의 말에 묶어 찢어 죽이는 벌이었다. 장홍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했으나 누구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형 집행 전에 형리가 장홍에게 말했다.“너는 억울하다고 하지만 아무리 울부짖어도 소용없다. 신통력을 부리는 자가 운이 좋고 나쁜 것도 모른단 말인가? 그건 일의 동기가 되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꾸몄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 죽음의 구덩이를 판 것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장홍은 재주 한번 피워 출세를 해보려다가 도리어 망하고 만 것이다. 이는 중국 신화에 있는 이야기이다. 변명무로(辨明無路)란 변명할 길이 없다는 뜻이다. 잘못한 이유가 명백할 때 쓰이는 말이다. 선거 때가 되면 재주를 피워보려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 무당과 점쟁이와 도사를 동원한 후보자가 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여론은 하늘의 뜻인데 어떻게 신통력이 통한단 말인가?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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