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요즘 활터에서 이런 엄격한 질서 얘기를 했다가는 손가락질당하는 것을 넘어서 맞아 죽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인데 조선 시대의 질서를 지껄이느냐고 말이죠. 그런데 활터에는 묘한 매력을 풍기는 질서가 있습니다.

활쏘기는 무기였고, 지금도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위험한 놀이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통제해야 하고, 그런 통제력이 활터에 미칩니다. 함께 나아가고 함께 물러선다는 뜻의 ‘동진동퇴’나, 예절이 먼저이고 활은 나중이라는 뜻의 ‘선례후궁’, 나아가 무한한 사랑을 베풀라는 뜻의 ‘인애덕행’ 같은 황당한 조목까지 활터의 계훈(戒訓)에 포함되었습니다.

나아가 실제로 활을 쏘다 보면 활쏘기에 내재된 엄정한 질서를 만나게 됩니다. 예컨대 몸속에서 화살이 과녁까지 제대로 가서 박히도록 하는 힘의 원리가 있습니다. 누구나 다 쏠 수 있지만, ‘전통’ 사법으로 쏘기까지는 노력이 필요하고 자신을 낮춰 구사들에게 배움을 청해야 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만약에 이런 과정을 생략하면 몸이 깨달음을 줍니다. 팔꿈치나 어깨 같은 곳이 아파서 결국은 활을 못 쏘는 지경에 이르죠. ‘전통’을 무시하면 ‘폐궁’에 이릅니다.

결국, 활쏘기는 선배들의 물려준 전통 사법이라는 원리(道)를 자신 내면에서 작용하는 힘을 원칙대로 길러서 그것을 몸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德)입니다. 앞서 말한 사회 체제 안의 질서가 몸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야 하므로 그에 따르는 행동 수칙이 있습니다. 위험한 만큼 그 수칙은 엄격합니다. 사회에서 멋대로 굴던 몸을 이런 틀에 맞추려고 하다 보면 활터에 서린 눈에 보이지 않은 질서를 느끼게 되고, 그런 질서를 하나하나 확인하다 보면 활쏘기가 단순히 운동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됩니다.

예절은 원래 아무런 모양도 형식도 없는 자연인인 나를 사회의 틀에 맞추는 과정이고 절차입니다. 결국, 틀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자신과 사회가 요구하는 틀 사이에서 욕망을 제어해야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을 예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른이 다 된 사람이 활터에 와서 새삼스레 느끼는 것입니다.

일본 궁도의 경우는 회원의 주축을 이루는 사람들이 학생들입니다. 그만큼 엄정한 질서를 가르치려는 의도가 뚜렷하고, 그런 질서를 통해 일본의 전통문화 속에 자신을 적응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스템입니다. 바로 그런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일본에서는 굳이 유미(弓)를 ‘규도(弓道)’라고 부르고, 과녁 맞히기가 아니라 활을 쏘기까지 진행되는 일련의 동작을 중심으로 평가를 재구성했습니다.

활터에는 관덕의 모습이 아직 강하게 남았습니다. 어디까지 남기고 어디까지 버려야 할지 이제 누군가 말을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격술만 달랑 남은 오늘날의 활터에서 지껄일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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