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중산고 교감

 

[충청매일]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는 사고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려 10분이 지나면 모든 기억을 잊는다. 그는 사고 이후에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중요한 사물이나 장소, 사람을 사진으로 찍고 몸에 문신을 새긴다. 이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기록에 집착한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이 ‘기억은 기록이 아닌 해석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는 것이 특별하다. 기록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상황도 흥미로웠지만 기록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경험한 것을 기록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시험이 끝나면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오답노트 작성을 권한다. 학생들이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었는지, 몇 점인지, 틀린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자신이 틀린 문제를 그대로 적어보기도 하고, 다시 풀어보면서 출제자의 출제의도를 파악한다. 학생들은 틀린 문제를 다시 풀면서 꼭 알아야할 핵심개념은 무엇인지 정리해보고 왜 틀렸는지 정확한 이유를 분석한다. 유사한 문제가 나왔을 때 또 틀리지 않기 위해서다. 이런 연습을 충분히 반복하면 실제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낼 수 있으니 오답노트 작성은 학력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바둑에서도 대국을 마친 후 반드시 복기(復碁)를 한다. 처음부터 하나씩 돌을 다시 놓으면서 대국의 과정을 되짚어본다. 복기를 하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 승부는 끝났지만 다음의 대국이 있기 때문에, 복기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인생의 오답노트를 쓰는 것도 바둑에서의 복기와 같다.

오답노트는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크고작은 일을 겪다 보면 실수하기도 하고 뒤늦게 후회하기도 한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큰 손해를 입거나 예기치 않은 일로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허둥대는 경우도 많다. 사소한 오해로 친했던 사람과 소원(疏遠)해지거나, 말 한 마디 때문에 평생을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도 많다.

인생에 정답과 오답은 없겠지만 지나간 일을 꼼꼼하게 따져보는 일은 꼭 필요하다. 더 성숙한 삶을 살기 위해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손실을 줄이고 발전된 삶을 위해서 오답노트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지나 듣는 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이순(耳順)의 나이를 향해가는 마당에 오답노트를 열심히 써보려 한다.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판단하고 경험한 것을 조용히 돌이켜보고, 부족하고 아쉬운 것을 중심으로 오답노트를 써서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삶에서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며, 새롭게 떠오르는 해는 후회 없이 마주했으면 한다.

● 약력
   -현 충주 중산고 교감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충주신문 컬럼위원(2003∼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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