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대 칼럼] 죽천변 소롯길
[이종대 칼럼] 죽천변 소롯길
  • 충청매일
  • 승인 2021.12.0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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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죽천을 끼고 도는 소롯길을 걸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길 걷기를 좋아한다. 하천을 끼고 줄지어 서 있는 아파트 숲 옆으로 수킬로미터 이어지는 이 길은 주민들에게도 사랑을 받는다.

소롯길에도 계절의 변화는 뚜렷하다. 봄에는 개나리며 진달래 같은 봄꽃이 경사진 둑에서 다투어 피어나 봄이 왔음을 일찌감치 알려주다가, 4월이 되면 길가에 늘어서 있는 살구나무에서 연한 홍색의 살구꽃들이 세상을 온통 꽃 대궐로 바꾸어 놓는다. 살구 꽃길은 걷는 사람들에게 무릉도원의 꿈을 꾸게 한다. 7월이 되어 여름이면, 붉은 빛을 띠는 노란색 살구 열매가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요즘 그 열매를 거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살구 열매는 새나 청설모 같은 작은 짐승들에게 식량으로 요긴하게 쓰이는 것 같다. 한번은 새가 날아와 잘 익은 살구를 쪼아대는 바람에 얼떨결에 떨어진 다른 살구 열매 하나가 내 머리에 툭 떨어져 웃음을 짓던 일도 있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진다. 한 잎, 두 잎 떨어져 내리다가 비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마치 눈처럼 사방 흩어져 날리곤 한다. 낙엽 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천천히 길을 걸으며 저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이 죽천에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작은 물고기들이 하천을 유영하는 모습이 눈에 띄곤 하는데 이런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찾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물고기가 있으니 백로를 비롯한 새가 가끔씩 눈에 띈다. 먹이감을 찾아 이리저리 다리를 옮겨 딛는 모습은 평화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죽천이 이만큼 주민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결코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내가 이곳 주변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던 2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생활하수로 오염된 썩은 물이 흐르던 버려진 곳과 같았다. 그러던 것이 몇 번의 대공사로 생활하수는 차집관로를 거쳐 별도로 흐르고, 하천에는 자연수만이 흐르게 되면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이 조금씩 맑아졌다. 그리고 얼마 뒤 물고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죽천에서 처음으로 물고기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죽천에 물고기가 돌아왔다고 큰 소리로 떠들던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물고기를 좇는 새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다리 위에서, 제방에서 이런 감격적인 광경을 지켜보며 흐뭇해하곤 했다. 죽천을 살리려는 정성은 소롯길에도 이어져 제방 경사로에는 일부러 들꽃을 비롯한 여러 가지 꽃 묘목이나 나무를 심어서 가꾸는 분들도 계셨다.

지자체에서는 길가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새 것으로 교체하거나 보수하여 소롯길이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또 주민들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나뭇가지를 꺾거나 하는 일 따위를 자체함으로써 소롯길은 그런대로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19로 주민들이 이곳 소롯길을 걸을 때도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걷는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해도 이곳은 주민들이 환한 표정으로 걷기도 하고 간혹 웃음소리가 들리던 곳이었다.

새해에는 대화의 공간이기도 한 이 소롯길에 훈풍이 불어와 서로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즐겁게 걷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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