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누가복음 10장에 착한 사마리아 여인과 유대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유대인이 먼 길을 가던 중에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잃고 심하게 다친 채로 길에 버려져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사제 한 사람이 그를 보고는 모르는 체 한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직분을 맡는 레위사람도 그를 보고 피해 버렸다. 그러나 지나가던 사마리아 여인은 그를 보고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

입만 열면 박애와 사랑을 외치던 사제와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으나, 유대인과 적대관계에 있던 사마리아 여인은 그를 구해주었다. 이들은 여러 신을 섬겼기에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마리아 사람이 유대인을 구해준 것이다. 성경에는 그가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자신의 이해득실이나 자신의 위험을 떠나 남을 위해 몸을 던지는 의로운 사람이 간혹 있다. 불이 나자 남을 구하여 대피시키고 정작 본인은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 처절하게 침몰하던 세월호에서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어 제자를 구하고 목숨을 잃은 교사 등… 가슴 뭉클하게 하는 의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의인의 의로운 행동을 보기가 점점 더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양부모가 6세 입양 딸을 굶겨 숨지게 한 후 암매장한 사건이 있었다. 이웃 주민들은 평소에 양부모의 욕설과 아이의 울음소리를 자주 들었지만 아무도 이에 관여하여 말리거나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주변 일상에도 예는 있다. 동네 골목에 중학생 몇몇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모가 난 행동을 해도 누구도 관여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제노비스 신드롬’을 떠올리게 한다.

‘제노비스 신드롬’은 범죄 현장을 지켜보고도 모르는 체 덮어버리는 현상, 여러 사람이 있는 경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기보다 ‘나 말고 누군가 나서겠지’라고 생각하며 구경하는 방관자가 되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방관자 효과’라고도 한다.

‘방관자 효과’가 생기는 원인은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나서겠지!’라고 생각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심리 때문인지 보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경우에 그런 심리가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누군가 나서겠지!’의 심리 뒤에 숨겨져 있던 ‘내가 다치면 어쩌지?’,‘나에게 득이 안될 텐데!’의 심리적 요인이 더욱 판단을 좌우하는 시대인 듯하다. 어른들이 자녀에게 들려주는 가르침도 ‘의로운 사람이 되어라!’가 ‘남 일에 끼어들지 말아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강원도 한 도시에서 어떤 여성이 납치범에 끌려가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때 어느 고교생이 전화로 신고하려 하자 그의 어머니가 말렸다고 한다. 득 없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래전, 길가에서 남자 여럿이 한 여성을 때리며 짓밟는 광경을 보고 차를 멈추고 내려서 기사도를 발휘하려 했다. 에고…, 그날 나는 그들에게 큰 봉변을 당했다. 그 후 나도 남 일에 나설 때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러니 이런 본능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나만을 생각하는 요즘 시대의 ‘방관자 효과’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이다. 의인의 그 의로운 행동은 우리에게, 나에게 꼭 필요할 것이다. 의가 완전히 무너지는 세상은 절대 안 된다. 하지만 그는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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