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운’과 한자 교육이 무슨 관련 있나
[기고] ‘무운’과 한자 교육이 무슨 관련 있나
  • 충청매일
  • 승인 2021.11.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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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성/ 주덕초등학교 교감

이달 초 포털 사이트에 ‘무운’, ‘무운 뜻’이라는 단어의 검색량이 갑자기 증가하더니 한 언론에서 해당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였다.

내용인즉, 이달 초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무운을 빈다”고 말했다. 이에 한 기자가 “운이 없기를 빈다”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 기자는 ‘무운(武運·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운수)’을 ‘무운(無運)’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 ‘무운’에 대한 뜻을 몰라 검색하느라 ‘무운’ 검색량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어진 기사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 젊은이들의 어휘력 부족, 신조어나 영어 등을 좋아하는 흐름 등에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에서 한자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마무리하였다.

기사을 보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논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방송기자가 ‘운이 없기를 빈다’로 해석한 것이 단지 한자어를 몰라서 발생한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차적 원인은 한자어를 잘못 이해한 것이겠으나 오히려 그만큼 기자의 어휘력 부족이나 책무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휘력 부족으로 이런 현상이 발생했으니 어휘를 기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거나, 기자로서 방송에 출연하기 전 사전 검증이라는 기본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면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해당 기사문을 읽어갈수록 이 기자가 어쩌면 처음부터 한자 교육을 이야기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는 늘 논리적 생각과 접근을 위해 노력하지만 실상 다양한 오류에 빠진다. 어떤 특정 사건에 제시된 정보를 접하고 이를 일반화 시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우리가 쉽게 빠지게 되는 사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같은 오류가 일상적이라고 해서 언론 매체도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객관성을 전제로 하는 언론 매체가 범하는 오류는 독자의 객관적 평가를 방해한다. 그 기자가 젊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젊은이들이 ‘무운’을 모른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검색량을 늘린 대상이 젊은이들 뿐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더구나 기사의 논조대로라면 한자어가 필수로 포함된 교육과정을 이수한 30대 후반 이상의 연령층 대부분은 기사문에 제시된 ‘무운’, ‘양두구육’, ‘연패’ 등을 바르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뉴스 제작자가 어떤 관점에 서느냐에 따라 기사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언론사 성격에 따른 다양한 논조는 독자의 객관적 판단을 위한 도움을 줄 수 있다. 편중되지 않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건의 해석은 독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이러한 점들이 바로 언론사의 기능과 역할이기도 하다. ‘무운’으로 시작돼 한자 교육으로 이어지는 이 기사가 의도성이 있든, 그렇지 않든 두 가지 모두에서 문제가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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