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칼럼]별을 안고 떠난 女人
[김병연 칼럼]별을 안고 떠난 女人
  • 충청매일
  • 승인 2021.11.1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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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주예총 부회장

[충청매일]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일대의 클라이막스(절정)가 있는가 보다.

2003년 10월 군수, 법원장, 경찰서장 등 영동의 몇몇 기관장들과 함께 양산의 한 식당에서 회식이 있었다. 당시 나는 교육장으로서, ‘순자’는 150만부 판매실적의 베스트셀러 ‘별을 쥐고 있는 여자’의 작가 ‘김순지’로서 초청인사가 되어 참석했었다.

귀로의 내차 안에서 “오빠! 오늘 너무 좋다. 너무 기쁘다. 너무 행복하다. 나는 예술가로서, 오빠는 교육자로서, 학창시절 우리들의 꿈이 영근 것 같아서! 우리가 자랑스럽지 않아!?”라던 ‘순자’! 감미로운 목소리가 생생하다. 지내고보니 그날이 그녀와 나의 생애에 있어서 절정(絶頂)이었던가 보다.

내 인생에 일대의 전기가 된 것이 고1 여름방학 때였다. 뜨거운 여름날 팔밭(火田)에서 담뱃잎을 따 가지고, ‘바지게’에 잔뜩 싣고 뒷산을 넘어 오자니, 비 오듯 흐르는 땀과 담뱃진이 범벅이 되어 온몸이 화끈 거려 죽을 지경이었다. 담뱃짐을 바쳐 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등짐을 지며 살아갈 앞날이 한심스러웠다. 그날 저녁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영동(永同)에 방하나 얻어 주세요. 공부해야겠어요.”라고 아버지와 단판을 지었다. 그래서 고2가 되던 이듬해 자취를 시작한 곳이 먼 친척 여동생 ‘순자’(후에 ‘순지’로 개명)네 집이었다.

여고1 ‘순자’의 눈에 비친 나는 보잘 것 없는 시골뜨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영고 학생회장선거에서 시골뜨기가 당선이 됨으로써 그녀와 난 급속히 가까워졌다. 시골뜨기가 단숨에 자랑스러운 오빠로 부각되어, 말 많은 동네에 오빠자랑 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날이 없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남매는 별 같은 꿈을 안고, 꿈을 키우며 꿈같은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지난 10월 5일 홀연히 그녀가 유명(幽明)을 달리하였다. 태어날 땐 예고(豫告)가 있었지만, 떠날 땐 말없이 떠나는가 보다. 군청 입구 영동여중고기념 동상 앞에서 노제(路祭)를 지낼 땐, 고인을 마지막 떠나보내는 아쉬움에 지인들 눈가에는 이슬이 마를 줄 몰랐다. 

그녀의 일생은 불같은 열정으로 혼신(渾身)을 다한 삶이었다. 여고시절 별을 향한 꿈이 영글어 그녀에게 붙은 수식어는 ‘별’ 그 자체였다. 뮤지컬 배우, 드라마작가, 한국화가 등 예술방면에서는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였던 김순지! 국립가무단원, 색동회주최 전국동화구현대회금상, 대한민국미술대전특상, 방송리포터, KBS. MBC드라마 작가 공모 당선, MBCTV 창사특집 드라마 ‘생인손’을 통하여 백상예술상을 수상하는 등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이라면 닿는 곳마다 별이 빛나고 있었다.

특히 중국유학생 1호로서 중국화원 유학시절 당시 중국의 최고 지도자인 ‘등소평’의 장녀 ‘등림’(鄧林)과 두터운 친분을 통해, 냉전시대 한.중간 우의증진을 위한 가교역할을 했다.

별을 쥐고 태어나, 별을 쥐고 살다가, 별을 안고 떠난 여인(女人)! 지금쯤 어느 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까? 별을 안고 떠난 여인(女人)! 그렇게도 정다웠던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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