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그림책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에는 형태를 빛내는 색이 있다. 색깔이 지닌 의미는 무한일 것이지만 우리는 색에 대해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고, 사물의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기도 한다.

김영경 작가의 그림책 ‘색이 변하는 아이가 있었다’는 하얗고 순수한 아이가 사랑하는 세상의 색깔에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색이 변하는 아이가 있다. 아이가 처음으로 색이 변한 건 커다란 수족관에서 은빛 물고기를 보았을 때이다.

부쩍 자란 아이는 파란색 머리의 소년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모습이 변하는 줄도 모른 채 소년과 숲속을 거닐던 아이는 숲에 앉아 소년에게서 무언가를 건네받는다. 그것을 소녀가 받아들고 잠시 후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숲은 색을 잃고 컴컴해진다. 커다란 버섯 아래서 비를 피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비가 그치자 숲은 다시 빛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의 머리 색도 소년과 같은 파란 색으로 변해 있다. 해가 지며 숲이 예쁘게 물들어가던 그때 아이는 드디어 자신의 색을 보게 된다.

주황색 나무를 뒤로 한 채 아이는 황급히 숲을 빠져나와 집으로 달려간다. 집에 돌아와 소년과 같아진 머리색을 보며 소년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파란 머리색을 가진 그 아이를.

처음의 아이는 어떤 색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라면 당연히 무색이었으리라 하얀 도화지처럼 어떤 색이든 빨아들일 수 있는. 그 아이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의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이 물고기든 자연이든 동물이든 그것의 색에 반하고 그 색으로 변하며 자라난다. 드디어 색을 가진 소년을 만나며 그 소년을 사랑하게 되고 점점 소녀가 되어가는 아름다운 색의 번짐이 새하얀 도화지를 물들여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 책은 글이 배경이 되고 멋진 그림이 기승전결이 된 듯이 아이의 마음이 물들어가는 과정을 강렬하고 탄탄한 짜임새로 그렸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지? 마음이 가는 남자아이가 나타나면 주체할 수 없이 마음이 콩닥거리던 소녀 시절이 아련히 소환되기도 하고 지금의 나의 색은 어떤 색일까, 그 색이 나오기까지 나를 지배했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어느 아이에게 주었을, 받았을지 모를 색깔을 떠올려 본다.

분명 그 색깔은 아름다운 것만 있을 리 없겠기에 지금 나에게서 나오는 색에 물들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다 보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특히 아이들은 쉽게 물든다. 책 속의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어른들은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아이들이 무엇에, 누군가에게 마음과 몸을 빼앗겨 물들어갈지 걱정스럽게 조심스럽게 지켜보게 되겠다.

부정적인 것에 물들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모두의 마음, 그림책처럼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것들, 거센 소나기를 만나 숲속의 어두움도 경험한 후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느새 어른이 되어가는 자신에 만족하며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랄 것이다.

무슨 색이 제일 좋으냐는 물음은 무의미하다.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에 아이가 물들어가듯 우리가 선택한 색에 의해 나의 인생도 어떤 그림으로 채색될까가 결정되고 나의 존재도 그 여러 색 중에 하나라는 조심스러움이 있다. 이 책에서 색깔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사물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닮아가는 취향, 성품같은 것들을 통칭한다고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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