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아주 독특한 풍속 2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집궁회갑’과 ‘납궁례’가 그것입니다.

집궁회갑은 활을 쏘기 시작한 지 60년, 즉 활쏘기로 환갑을 맞으면 그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활터는 워낙 오랜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이런 희한한 행사가 존재합니다.

옛날에는 회갑을 맞는 일도 드물었는데, 집궁한 지 60년이라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20살에 집궁했으면 80살에 집궁회갑을 치릅니다.(‘한국의 활쏘기’)

집궁회갑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조선의 궁술』입니다. 「역대의 선사」라는 맨 뒤의 설명에 보면 구한말 명무인 ‘정행렬(鄭行烈)’을 설명한 대목에 처음으로 집궁회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당시에 집궁 60년을 맞아서 활터 사람들이 집궁회갑을 열어 축하했다는 기록입니다. 성락인 옹에 따르면 정행렬은 성문영 사두의 바로 앞 사두였다고 합니다. 그

러니 ‘황학정 사계’ 기록의 사장(射長)인 김세욱 다음으로 사두를 한 사람이겠지요. 후배들이 기억하는 이런 선배들은, 당사자의 축복에만 그치지 않고, 그 분야 전체의 축복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런 것이 쌓이고 쌓여 ‘전통’이 되는 것이겠지요. 있는 전통마저 제멋대로 만들고 구부리는 요즘 활터 풍토에서 보면 이런 전통은 참 거룩하기까지 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집궁회갑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 더욱더 놀라운 일입니다. 1944년에 서울 황학정의 성문영 사두가 집궁회갑을 했으니, 1884년에 집궁한 셈입니다. 그의 아들 성낙인은 2001년에 집궁회갑을 맞아서 2대에 걸쳐 집궁회갑을 한 보기 드문 대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대를 이어 집궁회갑을 한 기록은 금산의 박병일 가문에서도 있었습니다. 박병일이 1919년에 집궁하여 1979년에 집궁회갑을 했고, 그의 아들 박문규도 2016년에 집궁회갑을 했습니다.

이상은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집궁회갑의 사례입니다. 이 밖에도 집궁회갑을 한 기록은 주변에 적지 않습니다. 언뜻 생각나는 사람만으로도 부산 수영정의 윤준혁, 서울 황학정의 장석후, 박창운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장석후 사범은 집궁 80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나중에는 오래 설 힘이 없어서 의자에 앉아서 쏘기도 했습니다.

활터에 집궁회갑이 의외로 많다는 것은, 활쏘기가 장수 운동임을 입증하는 일입니다. 활을 배우고 맨 처음 느끼는 것이 소화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활을 제대로 쏘면 2~3순만 쏘아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그다음으로 많이 하는 소리가 ‘정력이 좋아진다.’라는 것입니다. 이건 본인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니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나이 드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런 얘기를 합니다.

활터는 단순히 세월만 오랜 것이 아니고, 그 세월의 더께가 쌓여 이루어진 풍속이 있고 전통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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