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수필가

이달 초 친구들과 속리산을 오랜만에 다녀왔다.

산을 오르면서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과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며 금년도 어느새 가을이 깊어짐을 감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속리산은 인근 미원면이 고향이라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온 이름이고 친구들과 자주 올라갔고 직장에서 여러 번 산행한 추억이 있어 친근함과 푸근함이 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는 가을은 풍요롭고 생활하기 좋은 계절이란 뜻에서 수확의 계절, 단풍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국화의 계절, 독서의 계절 등 찬미하는 수식어가 많다.

학창시절엔 교장선생님 훈화 시에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이라고 많이 들어 귓가에 생생한데 교육자로서 제자들에게 가을에 책을 많이 읽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의미의 교훈이다.

보릿고개 시절 농촌의 가을풍경 하면 생각나는 것이 많고 그립다.

첫 번째 벼 수확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여름방학 끝날 때쯤 봄에 심은 모가 자라 벼가 하나 둘 피기 시작하다 서서히 노랗게 물들다 익으면 마을사람 여럿이 집집이 돌아가며 낫으로 벼를 베고 볏단을 만들어 논 여기저기 마르도록 세워둔다.

어느 정도 벼가 마르면 지게로 지어다가 집 마당에 수북이 쌓아두고 말리다 날을 받아 탈곡을 하는데 여간 힘든 과정이 아니다. 힘은 들어도 가을 수확철에는 연중 모처럼 햅쌀밥에다 청국장과 고기를 먹을 수 있어 즐거웠고 행복했다.

두 번째 고구마 통가리가 생각난다.

그 시절 고구마는 쌀을 대신해 겨울에 먹는 유일한 양식이었다. 고구마를 캐면 볏짚으로 통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고구마를 저장해놓고 겨울 내내 삶아 먹기도 하고 화롯불에 구워먹기도 했다.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찾고 있지만 그때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주요양식으로서 필수 농작물이었다.

세 번째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이다.

김장은 지금도 담가먹고 있지만 그 당시는 냉장고가 없어 겨울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반찬으로 마을 큰 행사였다.

네 번째 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새로 만드는 작업이다.

당시 농촌은 모두가 초가지붕이라 해마다 새로 이어야 비가 새지 않기 때문에 연례행사로 했고 지붕위의 ‘박’은 농촌의 상징이었다.

다섯 번째 추수 감사의 예를 올렸다.

한해농사 수확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햅쌀로 떡을 하여 집안 곳곳을 돌며 제를 올리고 조금씩 띄어 놓곤 했었다.

여섯 번째 집에서만 키우던 닭을 논에 풀어 키웠다.

수확하다 흘린 벼이삭을 주워 먹도록 닭을 논에 풀어놨는데 그 모습이 옛날 전형적 시골풍경으로 지금도 생생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닭을 사육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여 오래전에 농지를 구입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릴 적 보아온 시골향수 때문이다.

지난 세월 가을의 모습을 회상해 보았는데 지금과는 격세지감이 많아 주위사람들에게 우리는 잘사는 나라라고 자주 이야기 하곤 한다. 예전의 가을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만 사람 간에 소박한 정이 있었고 시골의 아름다움과 낭만이 있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