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전(錢)은 돈을 뜻하는 글자이다. 부수인 금(金)이 의미이고 전(戔)은 돈이 쌓인 형상으로 발음 요소이다. 처음에는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동그란 엽전의 묶음을 나타냈다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지폐까지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돈은 비록 사람이 만들었지만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존재이다. 사람을 불행하게도 만들고 행복하게도 만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부자를 인생 목표로 삼는다. 부자의 돈은 또 요술을 부리기도 하고 심지어 귀신마저 부린다.

당나라 무렵에 장연상이라는 형조에서 죄인을 심문하는 관료가 있었다. 그의 직책은 죄를 지은 이들을 엄격히 조사하고 공정한 벌을 주는 일이었다. 하루는 조정의 고위관료이자 친한 친구의 아들이 역모 사건에 연루된 일을 맡게 되었다. 당시에는 역모에 관련되었다고 하면 그건 곧 목숨이 달아나는 일이었다. 장연상은 부하들에게 명명백백하게 말했다.

“우리의 판단 하나로 사람이 여럿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신중하고 신중하도록 하라. 한 달 안에 심문을 끝내고 사실 여부를 정확히 밝혀내라.”

그날 저녁 친구가 장연상을 찾아와 말했다.

“나는 자네가 공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네. 그러니 내 아들 또한 법이 정한 대로 벌을 받을 것이네. 그리고 이건 나의 작은 성의이니 받아주면 고맙겠네.”

친구가 내민 돈은 무려 3만 관이었다. 당시에 만 관이면 방이 백 개인 고급주택을 살 수 있었으니 실로 큰 규모의 뇌물이었다. 하지만 장연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네가 이렇게 한다고 자네 자식이 풀려날 것 같은가.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할 테니 그만 돌아가게.”

다음날 장연상은 부하들에게 조사에 박차를 가하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그러자 며칠 후 친구가 다시 찾아왔다.

“이보게 지난번은 내가 무례했네. 이건 5만 관이네. 우리 집안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네. 이걸 받고 내 아들의 일은 제발 덮어주게. 꼭 부탁하네.”

하지만 장연상은 크게 노하며 친구를 꾸짖었다.

“당장 내 집에서 나가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게. 나는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네.”

그러자 며칠 후 친구가 다시 찾아왔다.

“여보게. 이건 10만 관이네. 이제 나는 자네만 믿고 가겠네.”

친구가 놓고 간 돈을 쳐다보면서 장연상은 생각했다.

“10만 관이라니! 이 정도 돈이면 귀신과도 통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닌가. 이걸 거절했다가는 도리어 화가 내게 미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역모 사건에 연루된 친구의 아들은 무죄로 풀려났다. 이는 당나라 때 장고(張固)가 지은 ‘유한고취(幽閒鼓吹)’에 있는 이야기이다.

전가통신(錢可通神)이란 귀신도 부릴 수 있는 돈의 위력을 말한다. 뇌물은 아랫사람이 받은 액수가 크면 위로 갈수록 규모가 2배로 커지는 속성이 있다. 또 뇌물 받은 놈이 많을수록 안전해지고 일은 확실해진다. 그래서 규모가 큰 뇌물은 진범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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