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활터에만 있는 아주 독특한 의식을 소개하겠습니다. 득중례는, 활을 배운 뒤 처음으로 과녁 맞힌 것을 기념하는 예절이자 절차입니다. 대개 우연히 첫발을 맞히는데, 그것을 기념하여 ‘1중례’라는 걸 합니다. 딱히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과 간단히 술 한잔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걸 ‘득중례’라고 합니다.

화살은 1순 5시가 한 세트입니다. 그래서 2중 3중 4중 5중을 모두 해야 하지만, 1중을 하면 짝수인 2중은 제례(절차를 예외로 해줌)해 줍니다. 3중례와 5중례만을 합니다. 특히 5중례는 ‘몰기례’라고 해서 특별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5발을 모두 맞춘다는 것은,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하면 된다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기념하여 주인공의 이름과 소속이 새겨진 궁대와 몰기 기념패를 활터에서 해줍니다. 그러면 당사자는 이에 대해 간단한 답례를 합니다. 한 턱 쏘는 거죠.

활터에서 과녁에 맞는 시수는 특별한 속뜻이 있습니다. 예컨대 활쏘기를 계속하다 보면 시수가 평 1중에서 평균 2중으로 늘어나면서 점차 실력이 높아집니다. 평 3중은 한 차원 높은 단계입니다. 즉 평 3중이 되면 요령을 완전히 터득하여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 맞히는 시수입니다. 여기서 특별한 일이란 2가지입니다. 자신이 점검해야 할 사안을 깜빡하여 빼먹고 쏜다든가 하는 자신의 조건이 첫 번째이고, 바람 같은 외부 조건에 영향을 받아서 화살이 덜 가거나 더 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 조건 때문에 5시 중에 1~2시가 불을 쏘게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시수가 평 3중을 넘어가면 처음에 배웠던 원칙, 예컨대 발에 어떻게 힘을 주어야 하며, 깍짓손이 어디 들어올 때쯤에 몸통의 어디를 어떻게 처리하고, 발시할 때 깍짓손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 하는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원칙들이 몸이 내면화되어, 굳이 자신이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단계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쏴도 그 동안 훈련된 몸이 알아서 그렇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연 몰기는 그런 상태가 꾸준히 지속될 때 나타납니다. 3몰기 5몰기를 지나쳐 때에 따라서는 10연 몰기도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몸이 완전히 기억하여 무의식으로 내는 것입니다. 운전석에 앉으면 아무 생각 없이도 차를 몰고 가는 내 몸처럼 말이죠. 나중에는 과녁의 네 귀를 골라 맞힐 수 있습니다. 이런 시수꾼을 ‘매화궁’이라고 합니다.

“시수 날 때 탈 나고, 탈 날 때 배운다.”라는 활터 격언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합니다. 처음에 원칙을 배워서 몸으로 길들이면 몸이 알아서 그것을 기억하여 화살을 보냅니다. 그러면 시수가 엄청나게 좋아집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집중하면 화살이 과녁의 홍심 한가운데만 맞습니다. 그러다가 홍심을 벗어나서 과녁 가장자리를 맞히다가, 어느 날 시수가 뚝 떨어집니다. 그러면 이제 슬럼프가 온 것입니다.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서 시작해야 합니다. 마치 시지프스의 운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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