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옥 청주오청도서관 사서

이동옥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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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철학은 먼지 쌓인 골동품이 아니다.

철학은 기존의 문법을 넘어 새 문법을 준비하는 도전이며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궁금해 하는 상상이다. 그것은 시대적 흐름의 제일 앞섬에서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여 아직 미처 깨닫지 못한 대중 속에서 홀로 용기 있게 발현될 창조적 탁월함이다.

고전속의 철학은 그래서 그 당대의 흐름을 파악한 연후에 제대로 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작가는 탈레스의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의미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말의 핵심은 이것이 진리라는 것이 아니라 ‘신(神)’ 중심의 시대에서 최초로 신을 벗어난 철학자로써의 가치에 있다. 믿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인간에게 생각의 세계로 이동하는 길을 열어준 선도력에 있다.

‘믿음’ 그것은 인간에게 얼마나 안락한 평화를 주는가? 죽음 너머의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불안’ 앞에서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진리의 믿음은 현실에 안주할 수 있는 의지가 되어준다.

허나 이 달콤한 ‘믿음’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어찌할 수 없이 ‘다름’을 인정할 수 없고 배타적이며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모험심을 상쇄시킨다.

이미 진리는 믿음 안에 있기 때문에 새로움을 향해 가는 용기, 상상, 창조와 창의의 의지와 상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철학은 평안함에서 올 수 없다. 그것은 ‘불안’과 동행할 수 있는 용기이며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려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다. 메타인지와 같은 전술이 아닌 전략이다.

최진석 교수가 주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고전철학이론를 따라 그 이론대로 그 틀 안에서 사유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은 ‘시대’라는 현실적 맥락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용기 있게 나아가는 시대의 선도자며 바탕이다. 지금까지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우리가 이제는 우리만의 독립된 철학을 가지고 도약해야 하는 창의적 과제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창의력은 ‘대답’하는 자에 있지 않고 ‘질문’하는 자에 있다.

‘유행, 트렌드…’ 우르르 쫓아감이 유독 심한 그 군중심리는 자기만의 철학이 없는 ‘놀란 토끼’의 불안에서 온다. 든든한 밑받침이 되어줄 철학의 부재.

우리의 철학으로 첫 단추를 채워나가는 것,  최진석 교수는 이 쉽지 않은 도약의 기로에 우리가 서 있음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몇 년 전 작가의 ‘EBS인문학특강’편을 영상으로 만나본 기억이 생생하다. 동자승 같은 해맑은 모습에 감칠맛 나는 특유의 억양과 뉘앙스를 떠올리며 책을 읽는 내내 듣는 기분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철학은 ‘용기’다.

최근 읽은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의 표지 문장이 떠오른다.

“루시는 여전히 겁이 나.

그러나 겁이 난다는 사실은 하나도 겁 안 나.

루시는 지금 아주 용감하게 겁이 나.”

‘용기’는 당연히 겁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용기’란다.

따라하기의 안락함을 버리고 우리만의 색깔을 창조한다는 것은 ‘불안’을 선택하는 용기이다. 하지만 이 불안’을 선택하는 용기가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종속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독립된 주체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험난한 여정만큼의 충분한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자, 이제 이 험난한 여정에 동참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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