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수필가

얼마 전 외교관인 동생이 휴가차 일시 귀국하여 형제들 몇이 만나 어린시절 이야기와 작고하신 부모님을 기리며 모처럼 형제애를 다졌다.

전 같으면 조카와 손자들까지 몇 십 명이 모여 큰 가족행사를 했겠지만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친형제들만 단출하게 만났다.

부모님 생전 형제들 어린 시절 이야기서부터 각자 손자들 재롱모습까지 주고받으며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해가며 시간가는 줄 모르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모두를 놀라게 한 것은 지난해 동생이 몸이 안 좋았는데 그 나라 의료기술이 우리보다 못해 긴박하게 서울로 와 치료받고 갔다고 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코로나 상황이라 알아도 면회도 안 되고 걱정만 할 거 같아 연락을 안 했다고 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모두 건강을 당부했다.

동생은 외교관 입문하는 시험도 가족들에게 안 알리고 보고 합격하고 얘기했던 과묵한 성격이다.

외교관의 기본적 자질을 타고 나서인지 임지마다 많은 업적을 남기고 승진도 남들보다 빨리한 엘리트 외교관이라 자랑하고 있다. 외교관은 수시로 나라를 이동해 근무하다보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날 주 화제는 부모님이었는데 부모님께서 갖은 고생하며 재산을 일구어놓은 덕분에 오늘날 잘 먹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로 감사의 표현을 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기본으로 하면서 아버지는 인근 청주, 보은, 청천, 내북 등으로 소전을 보며 8남매를 키웠다. 아버지가 소전에 다닐 땐 매일 밤길 몇 십리씩 걸었다. 가끔 산성에 가면 옛날 낭성으로 가던 산길을 보게 되는데 아버지가 그 당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을 하며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여름 장마 때 청천장에 갔다 오다 급류에 쓸려 구사일생 몸만 겨우 나왔다고 하는데 참으로 고생도 많았고 기적 같은 삶이였다. 그 시절 모두가 어려운 시기였지만 부모님이 고생한 이야기를 누나 형님들에게 듣다보니 그동안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어 감사의 눈물도 흘리며 울다가 웃다가 했다.

하나밖에 없는 누님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는 들에 나가 일해야 했기 때문에 동생인 필자를 볼 사람이 없어 등에 업고 그 먼 학교를 다녔다며 고충을 이야기해 미안도 하고 감사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 재산증식 과정에서 어디 땅은 어떻게 해서 샀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못 먹고 배 굶주리며 산 부모님 삶에 숙연해하기도 했다. 재산 상속 이야기도 나왔는데 모두들 낳고 길러주신 것 만해도 감사하단 이야기를 하며 고마워했다. 8남매 모두 중학교까지는 미원에서 부모님 농사 거들며 다니고 고등학교 때부터 청주에서 자취하며 다녔다.

그 시절 형님들 자취 양식 함께 들고 먼 신작로까지 가 만원버스에 실어주었던 기억은 지금도 많이 남아있다. 모처럼 해외 근무하는 동생이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조카 손자들하고 다 같이 모이지 못해 아쉬웠지만 조촐하게 형제끼리 모여 추억 여행한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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