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청주민예총 사무국장

 

가을 문턱, 지루한 장마 빗속을 걷다 젊은 두 남녀가 불러세운다. ‘시간 있으세요’ 시간이 있어도 없어야 할 분위기다. 호기심에 가던 길 멈춰 그들의 말을 듣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뻔하다. 20년 전이나 현재나 결론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야 잘 풀린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그들을 따라갔다가 제사에 필요한 돈을 인출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얼마나 멍청하면 눈 뜨고 코를 베이나 싶었다. 그들의 끈질긴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무시하고 가던 길 가는 수밖에 없다.

참, 오랜만의 경험이다. 조상 대대로 조상 섬기기에 최선을 다한 집안사람으로서 그들의 말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차라리 묘를 옮겨야 한다거나 굿을 하라고 했으면 고민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제사를 지낸 것일까. 고려 말기 안향이 원나라에서 주자가례를 들여왔고 조선 건국 후 이태조가 이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조선은 유교 문화가 형성되었다.

숙종 때 관혼상제 제도로 혼인, 장례, 소상, 대상, 절기명절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중국은 송나라 왕정시대 이후 유교학자 주희가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유교사상을 주장하며 주자가례 제사법을 만들고 왕에서부터 서민에게까지 확대되었다 한다. 나라의 질서를 잡을 예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중국은 유교를 바탕으로 질서를 잡으려 했다. 모든 집은 제사를 지내야 했으며 이를 어길 시 처벌을 받아야 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은 백성이 관아에 끌려와 어린아이 먹을 것도 없는데 제사를 어찌 지낼 수 있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조상을 모시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무엇을 배울 것이냐며 곤장으로 다스렸고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

오늘날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처벌받는 법은 없다. 종교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제사법도 축소되었고 제사를 중히 여기는 이도 많지 않다. 코로나 19로 인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분위기도 달라졌고 제사도 가족 단위로 조촐하게 지내는 일이 많아졌다.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인 조선의 제사 문화가 과연 우리가 지키고 계승해야 할 관습일까.

보은 회인 출신 오장환은 1936년 ‘성씨보’라는 시에서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라고 했다. 이는 조선 시대를 관통해온 봉건사회에 대한 부정이면서 근대사회에 대한 희망에 대한 노래이기도 했을 것이다.

매달 돌아오는 제삿날 저녁이면 온갖 과일과 고기 먹을 생각에 신이 났던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큰집이 떠안았을 경제적 부담과 부모님의 고생을 생각하니 후대에 물려줄 유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조상을 부정하거나 관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날이 갈수록 제사 문화는 간소해지고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도 있다. 소와 쟁기와 품앗이로 농사짓던 일이 이제는 풍속화 속 풍경이 되었듯이 말이다. 조상숭배가 통치이념인 세계는 길 가던 사람 붙잡아 놓고 제사 지내라는 집단밖에 없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하러 간다. 조상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선산에도 가야 하지만, 몇 해 전 돌아가신 엄마 보러 가는 날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셨던 엄마는 화장이 아닌 온전히 땅에 묻히길 원하셨다. 오랜만에 엄마도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까지 만나 뵙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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