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친구는 상기된 얼굴로 쇼핑백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그림 한 점이 얌전히 모로 누워있다. 몇 해 전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구입했다는 크림트의 ‘키스’라는 그림이란다. 복사본이긴 하지만 적지 않은 값을 치르고 산 그림을 몇 년째 방치해왔다며 액자에 넣고 싶다고 했다. 내가 아는 액자집이 있어 소개해주겠다고 했더니 벼르고 벼르던 일을 하게 됐다면서 다소 흥분한 모습이다.

어떤 그림이길래 이 야단인가 싶어 슬며시 꺼내 펴보았다. 모자이크 문양의 화려한 듯 오묘한 색감으로 남녀가 키스하는 그림이다. 내심 그렇고 그런 그림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라며 무슨 뜻인지 알겠냐고 묻는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는 선뜻 뭐라고 말을 못하고 머뭇머뭇했다. 친구는 그 그림에는 굉장한 비밀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작품 속의 남자는 크림트 자신이고 여자는 그가 운명적인 사랑을 한 여인이란다. 이루지 못할 사랑의 아픔을 그는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여자의 발이 남자 쪽으로 향하지 않고 밖으로 비죽이 나온 것이 그것을 암시하는 거란다. 여인은 분명 남자에게 몰입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에 잠겨있다. 얼핏 보면 에로틱한 장면인데 전혀 예상 밖의 해석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진짜 모습이 이런 건 아닐까?

크림트의 키스는 동상이몽이다. 내가 맨 처음 동상이몽이란 말을 들은 것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였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먼저 배워서일까. 부부가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편견이 생겼고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늘 같은 생각을 하고 사는 부부가 과연 얼마나 될까. 상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길 바라는 데에서 갈등은 시작된다. 어디 부부 사이뿐이랴. 부모자식 간이든 친구 간이든 서로 생각이 일치하기란 쉽지 않다. 친할수록 예를 갖추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상대방의 생각이 늘 나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데 종종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서운해하곤 한다. 서운함이 쌓이면 차츰 오해와 불신을 부른다.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대화하는데도 듣는 사람은 자신이 편한 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일쑤다. 각자 서로 다른 스키마를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눈빛만 봐도 다 아는 사이라 하더라도 다름은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불편해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면 상대방보다 오히려 내가 훨씬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우리는 서로 공통분모가 있어 그 힘으로 살아간다. 공통분모가 많을수록 친밀감은 더해진다. 그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상이몽은 탓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블랙홀로 빨려들 것처럼 격정적이고 솜사탕처럼 감미로운, 그렇게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키스의 유통기한은 과연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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