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캐나다에서 첫날 아침이다. 일찍 눈을 떠 산책 겸 호기심 겸 밖으로 나왔다. 온 동네가 나무로 무성하고 초록빛으로 싱그럽다. 얼마 안 가서 숲으로 이어진 공원이다. 잔디가 펼쳐져 있고 개울을 건너 숲속 오솔길로 이어진다. 가끔은 노루도 자태를 드러내다가 수줍은 듯 나무 뒤로 몸을 숨긴다. 모든 생물이 풍요롭다. 나는 설렘을 뒤로 부러웠다.

‘우지직 콰다당!’

다음날 새벽 잠결에 놀라서 다들 뛰쳐나갔다. 새벽부터 세차게 부는 비바람에 정원에 있던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졌고 그 나무가 내가 묵고 있는 조카네 이층집 지붕을 덮친 것이다. 다른 집 나무도 옆으로 쓰러져 잔디밭에 누워 있다. 의아했다.

태풍이 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진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상한 것은 이층집을 덮칠 만큼 큰 나무가 길이 1m 정도밖에 안 되는 한 아름의 뿌리로 지탱하고 있었다. 다른 집 쓰러진 나무도 마찬가지였다. 양분이 풍족한 토양 덕에 뿌리가 깊게 자랄 필요가 없었다.

양분을 찾아 땅속으로 뻗어가는 긴 뿌리와 흙에 스민 습기라도 빨아들여 보려는 잔뿌리들의 치열한 생존 투쟁 없이 안락한 풍요 속에 뽀얀 다리에 안주해 자라다가 일순간 나뒹굴어 버린 것이다.

생물에게 과도한 풍요는 생명력을 약화시키고 난관에 취약하게 한다. 생존을 위협하는 갈급한 부족함은 손톱 발톱이 갈라지고 닳아 없어지는 고통이 오더라도 말라비틀어진 땅을 후비고 돌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게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이어 가다 보면 그 고통의 과정이 삶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원동력을 만들어 주고 웬만한 고난에는 흔들리지 않는 눈빛을 갖게 한다. 나무의 생존에 필요한 양분에는 열악한 환경도 꼭 필요한 양분 인자였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일 듯싶다.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양분에는 풍족한 사랑과 물자만이 아니라 고난을 주며 스스로 헤쳐나가게 하는 역경도 꼭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풍요로운 가정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 대부분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한편 상상도 못 할 고생을 하며 자란 사람들은 이겨내기 힘든 고통스러운 고난에 맞닥뜨려졌을 때, 큰 흔들림 없이 묵묵히 난관과 역경을 더 잘 뚫고 헤쳐나간다.

‘학교에서 왔어? 씻고 냉장고에 있는 우유와 과일을 먹고 30분만 쉬어라! 다 쉬었으면 이제 나가서 미술학원 차를 타라.’

모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어머니 한 분이 자녀와 매 시각 전화로 주고받는 내용이다. 나는 기어코 한마디를 했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생각하는 힘이 어떻게 생길 수 있겠으며 스스로 판단하고 의사 결정하며 자기 앞길을 헤쳐 나가는 힘이 어떻게 길러지겠냐’고.

캐나다의 쓰러진 거목에게서 느낀 것처럼,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 주다 보면 아이는 깨닫는 것이 구체화되는 것이 적어진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었다.

최악의 고난 속에서 인류 최대의 역사적 작품이 탄생했다. 주문왕은 은나라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주역을 만들었고, 손자는 다리가 잘리는 형벌 뒤에 손자병법을 완성했으며, 정약용은 귀양지에서 50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평탄하기만 한 여정에서는 걸작이 나오기 쉽지 않다. 어이없이 쓰러진 캐나다의 정원수는 황망한 몸짓으로 애절하게 얘기하고 있다. ‘편안한 풍요에 안주해서도 열악한 운명에 비관해서도 안 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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