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이런 여러 정황을 바탕으로 우리 말의 오늘과 앞날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생각이 어지러워집니다. 먼저 오늘날 우리가 쓰는 글의 여러 규칙이 과연 말과 글 사이의 틈을 줄이는 쪽으로 쓰이고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맞춤법과 가로쓰기의 문제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끄집어낸 것입니다.

굴절어에 적합한 띄어쓰기를 교착어인 우리 말에서 택한 것은, 당시에는 궁여지책이었겠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창의성이 거의 없이 남의 글쓰기 행태를 언뜻 보고 성급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그 결과 맞춤법 능력은 전문가만이 소유하는 특권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백성들은 한 글자를 쓸 때마다 띄어써야 하나 붙여써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어, 날마다 살얼음을 딛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을 과연 발전이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글자를 만든 세종께서도 ‘어린 백성’을 생각하셨는데, 한글을 이렇게 어럽게 만들어 놓은 오늘날의 한글학자들을 과연 어떻게 평가하실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정당화를 해도 오늘날 우리가 글을 쓸 때,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고민하지 않고 쓰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세종 임금의 뜻과는 어긋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쓰기도 편하고 읽기도 편해야 하는 것이 세종의 뜻이고, 한글학자들은 반드시 이 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뜻이 또렷해지는 것이라고 해서 어려움을 강요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세종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글의 앞날도 이런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그러자면 이제 오늘날의 한글 표기 원칙 중에서 우리가 얼마나 편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우리글이 소리를 적는 것이기 때문에, 소리값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방향을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일단 크게 띄어쓰기 문제와 이어쓰기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야입니다. 띄어쓰기는 너무 어렵고, 소리나는 대로 적지 않는 지금의 표기방식은, 소리의 본래 값과 너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고개를 외로 칠 수밖에 없습니다. 한글 정책은 워낙 확고해서 온 백성을 따돌리고서라도 저 혼자 제 갈 길만 꿋꿋이 갈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평생 국어를 가르친 교사가 한글 앞에서 절망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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