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충청매일] 인간의 생사(生死)를 비춰보는 기록에는 저작을 비롯해 세상을 떠난 이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바깥에 돌을 세운 묘비(墓碑)나 묘갈(墓碣:비석에 덮개돌이 없는 형태), 그리고 상석에 음각(陰刻)으로 남겼다. 삼국시대부터 사대부가에서는 묘 안에 지석(誌石)이라고도 하는 묘지명을 새겨 함께 부장(副葬)하기도 했다. 묘지명(墓誌銘)은 돌이나 도판(陶板)에 세상을 떠난 이의 이름, 신분, 행적 등을 남기기도 하는데 간혹 아름다운 서체와 명시도 있어 그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史料)가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유교 제도하에서는 한 묘역에 비를 세우면서 일반적으로 부부가 함께 기록되는 것이 상례이지만 부인 단독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특히 고려시대 염경애(廉瓊愛)의 묘지명을 보면 출가한 여성에게도 성과 예쁜 이름까지 사용해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 존중과 양성평등이 일부나마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시대의 변천과 관심도에서 멀어지면서 문화재 지정이 안 된 일반 비석물의 훼손과 망실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가족제도의 단순화와 도시개발로 아예 없어지거나 심지어 땅 속에 매장되기도 한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과 함께 풍화돼 판독이 불가능 정도로 훼손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비석유물과 기록을 모으려는 시도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짐은 당연한 처사이다. 한자를 모르는 후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한글 번역은 물론 탁본을 남겨 유물이 상실되었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 또한 적기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비문의 원문을 일일이 입력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지만 한글로 것은 아직까지는 AI(인공지능) 번역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한문 해독자들이 직접 번역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이 대부분 고령자들이어서 더 이상 시간을 미루었다가는 미지(未知)의 문자로 남겨질 가능성이 있어 국가 정책으로 ‘금석문 일제조사 사업’은 그 의도가 매우 뜻깊다, 이들 결과물을 번역시스템 사이트와 연계해 검색이 가능하게 한다면 앞으로 금석학 관련 번역은 일부나마 해결할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과 한국고전종합DB(db.itkc.or. kr)에서 제공되는 번역물은 우리나라에서 고전번역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그런데 예산과 인력 부족 상황인지 개선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 번역자가 참조할 수 있는 참고문헌과 주석을 비롯해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알고리즘(Search algorithm)이 더 개발돼야 한다고 본다.

금속활자본 ‘직지’가 종교유산이자 동시에 세계기록유산산인 것처럼, 한 문중의 비석일지라도 어떤 특정인이나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모두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금석문도 인쇄문화 유일본으로서의 가치를 공유해 모두의 자산으로 보전해야 할 문화유산인 것이다.

조상들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금석문이 자칫 없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우리나라가 기록문화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반드시 해야 할 사명임에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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