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칼럼] 동행(同行),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지혜
[김병연 칼럼] 동행(同行),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지혜
  • 충청매일
  • 승인 2021.08.1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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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주예총 부회장

 

[충청매일] 5년간의 중국생활을 청산하고 작년 3월에 영동의 고향집으로 귀향해,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그 동안 아껴 모아 둔 돈으로, 황토방, 편백나무 벽, 태크 마루, 지붕 씌우기, 앞 처마 3m 등을, 건물 원형은 그대로 보존한 채로 설치했다. 그리고 손자들을 위해 원격수업이 가능하도록 와이파이도 설치했다.

지난주에도 손자 ‘종명’이와 외손자 ‘승기’ 외손녀 ‘승원이’ 세 명이 몰려 왔다. 올해 6학년인 종명이는 작년까지 만해도 비만 때문에 걱정이었지만, 작년 여름방학이 계기가 돼, 격투기 도장까지 2km씩 걸어 다니며 심신을 연마함으로써 이제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영동에는 충청, 전라, 경상도의 기점이 되는 삼도봉(三道峰:1178)이 있다. 오늘은 그걸 정복하기로 작정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체력이 걱정된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아프리카 최고봉인 6천570미터의 킬리만자로는 마사이족 말로는 ‘하나님의 집’이라 불린다. 정상 가까이에는 얼어붙은 미이라 상태의 표범시체가 하나 있다. 그런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얼 찾고 있는 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까지 아무도 없다”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날씨가 산행하기 너무 좋은 날이다. 담소를 나누며 손자 둘이서 할아버지를 이끌며 쉬엄쉬엄 오르니 드디어 정상이었다.

‘야호!’ 이것이 바로 하늘과 땅에 꽉 찬 기운인 ‘호연지기’리라!

인생사가 그렇듯이 산행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조심해야 한다. 정상을 뒤로하고 얼마지 않아서 ‘종명이’가 발목이 아프다고 호소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비틀거리는 걸 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우선 배낭을 뺏어서 할아버지가 매고 손자의 왼쪽 어깨를 부축하며 내려오니 엎어질 염려는 불식됐다. 그러나 장마로 흙이 빠져나가서 온통 자갈길인데, 그길을 가려니 앞길이 캄캄했다. 손자의 입에서는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손자와 할아버지는 엉켜서 사경을 헤맸지만, 4학년인 ‘승기’는 앞장서서 끄덕도 안는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냉찜질을 하면서 한 숨을 돌리고서 걸으니 훨씬 덜 아프다고 한다. 길가에서 만난 등산객들은 “훌륭한 손자들을 뒀어요!”라고 칭찬한다. 할아버지의 다리는 부지깽이가 됐지만 손자에 비하면 문제가 되질 않았다. 어떻게 내려 왔는지 모르지만 내려오니 해거름이 다가온다.

손자들과 함께한 삼도봉 산행이라! 그것은 사경을 헤맨 동행이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과 같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지혜’를 얻었다. 석과(碩果)는 가을에 남겨둔 ‘씨 과일’이다. 씨 과일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이 된다. 석과불식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오늘의 동행을 계기가 돼, 손자들은 석과가 되어 거대한 숲으로 자라나길 기대해 보았다.

손자들과의 삼도봉 동행이 석과불식의 지혜로 살아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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