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석의 흔들의자] 오늘 바람처럼
[서강석의 흔들의자] 오늘 바람처럼
  • 충청매일
  • 승인 2021.08.1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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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머리카락이 기분 좋게 이마를 도닥인다. 산들바람이 이마, 콧잔등, 뺨을 스치며 귓가에서 속삭인다. ‘힘들었지? 이제 편히 나를 느껴봐. 행복해질 거야…’ 멀리 푸르른 나뭇잎들도 반짝이며 바람에 하늘하늘 즐겁고 가까이 이름 모를 풀잎들도 산들산들 어울리며 즐겁다. 내 가슴속 소복이 쌓인 노고와 애환도 어느새 산들바람이 슬렁슬렁 흩날린다. 바람은 싱그럽고 나는 느긋하게 여유로워진다. 한참을 그늘에 앉아 바람을 음미하던 내게 바람이 스민다. 나도 바람이 됐다.

바람은 훨훨 자유롭다. 바람은 나그네이다. 바람은 오지랖이 꽤 넓은 나그네이다. 어떤 때는 세상일에 차분히 위로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참견질로 일을 망치기도 한다. 또는 스스로 화를 감당하지 못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한다.

바람! 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붙잡히지도 않지만 바람은 생을 불어 넣기도 하고 모든 것을 삼켜 버리기도 한다. 바람이 없다면 생물도 무생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드나들며 바람이 오가면 100년을 버티는 집이 문을 걸어 잠근 채 왕래가 끊기면 그 집은 오래지 않아 폐허가 된다. 동식물도 물과 양분이 공급돼도 공기 왕래가 없는 밀폐된 곳에서는 살지 못한다.

바람은 공기의 실체에 햇빛과 지열의 에너지를 받아 활동 양분을 만들어 채우고 주변의 습기를 흡수하며 자기만의 모습으로 성장한다. 우리 사람도 배우고 공부하고 깨달아 가며 도덕, 지식, 인성 등을 양분으로 채우고 사회에 나가 일을 찾으며 부와 명예, 권력의 옷을 입으며 성장한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도 바람 같다.

바람의 사회적 가치와 멋은 무엇으로 가늠될까? 바람의 가치는 채워진 후의 모습에 좌우된다고 생각된다. 땀을 흘리는 일꾼 곁에선 땀을 식힐 만큼, 돛단배 곁에선 큰 배가 움직일 만큼, 해안가 서핑(surfing)장 곁에서는 높은 파도가 일 만큼 바람이 불어 역할을 할 때 바람의 보람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바람은 머금은 온도와 습기를 주변과 나누며 적당히 보조를 맞추며 서서히 변화하고 성장하면 주변에 필요한 바람이 된다. 그는 그가 닿는 곳마다 생장하게 하고 주변을 즐겁고 행복하게 돕는다. 하지만 그 바람도 과도한 습기를 품거나 열기에 큰 욕심을 부리면, 언젠가는 태풍, 해일, 토네이도 같은 폭군의 모습으로 바뀌어 이웃을 집어삼키기도 하고 산산이 부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도 몇 발자국 지나면 다시 한 줌 바람이다.

사람의 삶도 바람과 같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감돌며 그때가 그립다. 딱히 꼭 집어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가슴이 아리하게 풀리며 그립다. 짓궂은 친구의 괴롭힘도, 선생님의 몽둥이 매질도, 죽어라 드잡이를 하며 싸우다 맞은 일도 그 어릴 적 그리움을 막지 못한다. 지나고 보니 그때 우리는 실바람이고 남실바람이었다. 해 갖가지 심술 바람을 겪어본 지금에서야 그 시절이 소중하고 그리운 것인가 보다.

아무것도 모르며 떠도는 바람처럼 철부지로 넋 놓고 보낸 허송세월도 있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보낸 인고의 세월도 있다. 지금의 나는 욕심 없이 산다고 자부하면서 아니 자위하면서 어느새 육욕 물욕 권력욕 명예욕에 젖어 살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내 삶이 언젠가 어느 욕심으로 과도하게 가득해지면 무서운 토네이도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건강과 행복을 잃고 주변과 함께 모두 피폐해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내 내려놓지 못하고 그리로 한발 한발 다가간다. 그도 몇 발자국 지나면 한 줌 바람인 것을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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