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대 칼럼]꼬꼬와 삼계탕
[이종대 칼럼]꼬꼬와 삼계탕
  • 충청매일
  • 승인 2021.08.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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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8월도 중순. 더위가 절정이라는 말복도 지났다. 올여름은 예년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코로나19가 무서워 되도록 집에 있어야만 했다. 어떻게 올여름을 지냈나 싶다. 문득 복날 먹던 삼계탕이 눈에 아른거린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닭의 뽀얀 속살. 거기에 몸에 좋다는 인삼 한 뿌리까지 입에 넣다보면 어느새 더위도 물러가는 듯 했다.

삼계탕 하니,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시골 우리 집에는 비교적 넓은 마당이 있었다. 군청에 다니시던 아버지는 마당에 가축을 기르셨다. 한편엔 돼지우리가 있었고, 다른 한쪽엔 닭장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동물 가족들에게 먹이를 주는 게 참 좋았다. 돼지는 먹이를 줄 때면 신나서 꿀꿀거렸다. 닭들도 모이를 주는 대로 우르르 몰려들어 쪼아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불운이 닥쳐왔다. 바로 닭 콜레라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던 것이었다. 애지중지 기르던 닭들은 하루아침에 주검으로 변해갔다. 아버지는 결국 양계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일이 있은 뒤 우리 집안에서는 아무도 ‘닭’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안 되었다.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게 묵계였다. 그러다가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철모르는 어린 동생은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 한 마리를 사가지고 집에 왔다. 우리 식구들은 ‘정말 큰일 났구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버지가 퇴근하시길 기다렸다.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얼마 안 되어 집안에 병아리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 ‘이제 어떻게 될까?’ 식구들은 숨죽여 아버지의 처분을 기다렸다. 죄지은 사람처럼... 불벼락이 내릴 줄 알았다. 천만다행으로, 아버지는 그냥 넘어가 주셨다. 막내 동생이 아무 사정도 모르고 철없이 병아리를 사왔던 것이니 아버지도 어쩌시지 못하신 모양이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마당 구석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노란 병아리는 정말 귀여웠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다. 우리집에는 더 이상 닭에게 줄 사료가 없었다. 그래서 이 병아리는 가족들이 식사를 하다가 한두 수저 던져주는 밥을 먹고 자라게 되었다. 물론 마당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제 살길을 찾기도 했지만, 가족이 식사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밥상 주변을 배회하는 거였다. 가족들은 병아리를 ‘꼬꼬’라고 불렀다. 꼬꼬는 점점 자랐다. 

한번은 안방에서 식사를 하는데 꼬꼬가 조금 열린 문틈을 비집고는 안방까지 들어왔다. 가족들이 꼬꼬를 쫓았지만 쫓을수록 닭은 마치 천장에 닿을 듯 꼬꼬댁거리며 푸드덕 푸드덕 날아다녔다. 닭도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밥상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 뒤로 꼬꼬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뒤 차려진 밥상에 닭고기가 놓여 있었다. 웬일인가 싶었다. 닭고기를 입에 넣다가 문득 어머니께 물었다. ‘우리 꼬꼬는?’ 가족들은 말없이 닭고기를 열심히 뜯고 있었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막내도 나를 따라 울었다. 울고 있는 내게 엄마가 닭고기를 입에 밀어 넣었다.

더위에 지쳐가면서도 코로나19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여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삼계탕을 먹을 때면 가끔씩 ‘꼬꼬’가 보고 싶다.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고향집의 닭장과 돌아가신지 오래된 아버지도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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