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뭣이 중헌디?! 영화 곡성에서 귀신들린 딸이 아버지에게 섬뜩한 표정으로 내 뱉은 말이다. 최근에는 트로트 가요의 제목으로도 사용될 정도로 유행어가 된 말인데, 영화에서는 매우 무겁고 의미 있는 표현이었다. 딸은 평소에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고 온통 일에만 신경 쓰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다.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바라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아버지가 미웠다.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방법을 몰랐던 탓이다. 딸의 입장에서 볼 때 아버지는 뭣이 중헌지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아버지요, 세 자녀를 둔 필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교육과 책을 통해서 일보다 가족과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며칠 전, 정시 퇴근을 하고 집에 온 필자를 보고 “아빠,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라고 말하는 딸의 반응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삶을 일치시키는 비중이 늘어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직장에서도 선배들과 후배들의 생활방식을 보면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특별히 급한 일이 아니면 저녁 시간을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은 필자가 입사한 때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 후배들의 모습에서 가끔 어색함을 느낄 때 ‘나도 이제 꼰대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헛웃음을 짓곤 한다. 어쩌면 지금 젊은 세대의 방식이 옳고 꼰대들의 방식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꼰대들은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일을 해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직장에서는 일에 치이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며, 야근과 술로 자신의 건강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다 진짜 중요한 것(가정, 건강)을 잃었을 때는 너무 억울하고 큰 후회를 한다.

꼰대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게 다 가족의 앞날을 위한 것이다. 조금만 참고 고생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나도 이러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가족들도 참고 견디지만, 진짜 행복하지는 않다. 아빠를 기다리는 자녀들의 바람은 오늘도 뒤로 연기된다.

미래의 무엇인가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미뤄놓는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꼰대적 삶의 방식이 자녀에게도 되물림된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 원망했던 아버지의 삶을 결혼 후 반복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된다. 왜 그런 것일까? 왜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삶을 따라하는 것일까?

인간에게는 두 가지 기억이 있다고 한다. 단기기억은 최근에 들은 새로운 정보에 대한 기억이다. 반면 장기기억은 오랫동안 반복적인 삶 속에서 새겨진 기억이다.

단기기억은 쉽게 잊어버리거나 바꿀 수 있지만, 장기기억은 아무리 노력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 며느리(단기기억)는 알아보지 못하지만 아들(장기기억)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삶 속에서 오랫동안 보고 배운 삶의 방식은 장기기억에 저장된다. 그래서 아무리 싫다고 몸부림쳐도 그 삶의 방식을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다. 특별한 방식의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얼마 전 자신의 건강과 탄소 중립과 자녀와의 소통을 위해 비싼 자전거를 샀다는 직장 동료가 뭣이 중헌지 아는 것 같아 기쁘고, 그의 방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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