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석의 흔들의자] 들꽃처럼
[서강석의 흔들의자] 들꽃처럼
  • 충청매일
  • 승인 2021.07.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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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순결과 행복을 지닌, 순백의 치자꽃이 피었다. 치자꽃은 올해도 어김없이 긴 장마를 데리고 왔다. 대지는 묵묵히 폭우를 품는다. 장맛비가 한바탕을 하고 나면, 더위에 지쳐있던 만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개를 든다. 호박이랑 참외랑 고랑에 얽혀 힘을 겨루고 고추랑 가지는 키 재기 다툼으로 바쁘다.

저 켠엔 청초한 여인의 자태를 떠오르게 하는 도라지꽃이 매무새를 다듬는다. 아내가 아끼는 수국과 장미도 생기가 돈다. 하지만 세파를 못 이긴 꽃나무도 있다. 꽃잎은 널브러져 떨어지고 푸른 잎조차 까맣게 타들어간다. 애처롭다. 모두가 사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치자꽃처럼 순수했고 그만큼 즐겁고 행복했다. 방학 내내 노느라 방학숙제를 깜박 잊어 벌을 받아도 킥킥 즐거웠고 성적 등수가 뒤로 밀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끼줄 기차놀이 중 다리를 먼저 건넌 맨 앞 친구가 방향을 꺾어 달리는 바람에 맨 끝 나는 개울로 떨어져 머리가 깨졌다. 그래도 그 친구가 좋아 다음 날 또 그를 찾았다. 그렇게 순백한 우리들의 어린 시절 앞에 평온한 따사로운 햇살과 비바람을 동반한 먹구름이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다.

주변의 꽃이 발산하는 아름다움과 가치는 바람과 같아서 잠깐 무관심하면 느낄 새도 없이 휙 지나가버린다. 또 여차하는 일이 생기면 피기도 전에 스스로 스러진다. 우리는 그런 꽃을 일일이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꽃들 각자는 그렇게 치열하다. 우리도 그렇고 그렇게 치열하다. 다만 꽃들도 우리도 순백의 행복이 함께 하면 좋겠다.

나는 어른이 되어가며 점점 나를 영위하기에 급급하다. 순수한 나눔과 함께함이 주는, 어린 시절 꿈꾸던 행복이 점점 빛을 잃는다. 조금 더 갖고 싶고 조금 더 쉬고 싶다. 조금 더 잘나 보이고 싶고 조금 더 영향력을 갖고 싶다. 하다못해 사진을 찍어도, 누군가는 끝 쪽에 서야함을 알면서 나는 꼭 중심 쪽에 선다. 나는 이렇게 안달이 났다. 참 큰일이다. 내가 한 만큼 갖으려 해야 함에 ‘조금 더’, 잘난 만큼 잘나 보일 텐데 ‘조금 더’는 나와 주변의 행복을 잃게 한다. 만약 우리 모두가 그렇게 안달이 나면 더 큰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립다. 미당 서정주 선생님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했다. 나는 생각이 선명하여, 눈물이 고일만큼 마음이 푸르른 날은 들길 들꽃 사이를 타박타박 걷던 순백한 어릴 적 내가 그립다.

행복하냐고, 꽃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모양을 더 아름답게, 색을 더 다양하게, 향기를 더 짙게, 양을 더 많이 생산하게 하기위해 접을 붙이고 약을 쓰고 유전자를 변형시키고 있다. 꽃에게 허락 받지 않은, 사람들의 ‘조금 더’란 욕심의 산물이다. 그 ‘조금 더’는 자연을 해치며 지구를 병들게 하여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이상 기후가 일어난다. 이상 기후로 천재지변이 발생하여 생태계의 평형이 깨지고 생물이 멸종하거나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도 ‘조금 더’에 대한 징벌 아닐까.

나는 들꽃에게 마음이 간다. 들꽃은 순백하다. 들꽃은 척박한 땅에서 외롭게 뿌리를 내려 주변 누구와도 함께한다. 들꽃이 뿌리를 내리고 나면 땅이 정화되어 깨끗한 땅에서 피는 꽃들도 찾아온다. 들꽃은 여럿이 함께할 때 더 빛난다. 들꽃은 ‘조금 더’의 길을 피해 있는 그대로 그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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