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881년 당나라 희종(僖宗) 무렵, 황소(黃巢)가 이끄는 농민 반란군은 삽시간에 전국을 휩쓸었다. 낙양을 점령한 후 수도 장안의 관문인 동관으로 향했다. 당시 동관에는 당나라 군사 2만 명이 지키고 있었으나 정황상 역부족이었다. 동관 책임자는 급히 사람을 보내 신책군을 파견해달라고 건의했다. 신책군은 왕실을 호위하는 최정예부대였다. 희종은 이전부터 신책군은 어떤 반란군도 제압할 수 있는 용맹무쌍한 부대라고 들었기 때문에 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장안이 시끌벅적해졌다. 환관과 고위관료와 부자들이 신책군 파견을 결사반대한 것이었다. 어렵게 논의를 걸쳐 파견된 병력은 5천 명이었다. 하지만 최고 정예부대의 출병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했다. 동관으로 향하는 신책군의 행렬에는 늠름하고 용맹한 병사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모두가 늙고 병든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신책군은 안녹산의 난 이후에 설치된 왕실 근위부대로 최고의 무예와 무술을 갖춘 병사들로만 구성되었다. 그리고 신책군이 되면 다양한 사회 혜택과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병사는 물론이고 그 집안은 세금 면제를 받았다. 그리고 때마다 왕실의 하사품을 받았다. 하지만 환관들이 신책군의 책임자를 좌지우지하던 때라 그 취지가 점점 퇴색되었다.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장안의 고위관료와 부자들의 자제라면 누구나 신책군의 군적을 갖고 있었다. 모두 뇌물을 주고 얻은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책군은 화려한 옷을 입고 말을 타고 장안을 누비고 다니기만 했지 군사훈련 따위는 일절 받지 않았다. 혹시라도 거리에서 신책군 병사와 마주치면 백성들은 길을 피해야 했다. 심지어 신책군 병사가 불법을 저질러도 포졸과 관리들이 함부로 관여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책군은 왕실을 호위하는 군대이므로 절대로 전쟁에 동원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희종이 동원령을 결정했으니 신책군의 가족들은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결국은 고위관료와 부자들이 환관과 결탁하여 누군가를 대신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장안에는 다른 지역보다 거지나 부랑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돈을 벌어 먹고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려는 자들이었다. 신책군 자식을 둔 집안에서는 이들을 데려와 대신 병역을 지게 하였다. 며칠 사이에 장안의 거지와 부랑자가 사라질 정도였다. 그러니 신책군의 출정을 지켜본 백성들은 모두가 장안은 이미 끝났다고 여겼다.

동관의 정부군은 파견된 신책군을 보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들이 당나라 최고 정예부대란 말인가! 정부군은 바로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황소의 반란군은 무혈입성하였다. 이때 신책군은 반란군이 장안으로 들어오는 안내자 역할을 했다. 반란군이 입성한다는 소식에 희종은 서둘러 장안을 떠났다. 이때 희종은 신책군의 호위를 받으며 밤낮으로 걸어 서쪽으로 도망쳤다. 장안에 진입한 황소는 국호를 대제(大齊)라 하고 황제에 올랐다. 이는 ‘신당서(新唐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용두사미(龍頭蛇尾)란 머리는 용이고 꼬리는 뱀이라는 뜻이다. 처음 출발은 좋았으나 끝장은 보잘것없이 흐지부지한 것을 말한다. 한 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 7월이다. 연초의 약속을 기억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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