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충청매일] 여름이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싶은 계절이다. 친구들과 만나서 정담도 주고받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그저 가슴에 묻어두고 세월이 가길 기다릴 뿐이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밖으로 나갈 수는 없어도 마음속으로 어린 시절을 그리는 일은 가능하다. 이럴 때일수록 지나간 옛 추억은 우리를 은근히 낭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청주에서 좀 떨어진 읍 소재지에서 자랐다. 이제는 돌아가셔서 추억으로만 남으신 어머니의 성장지이기도 한 읍내 리 집에서 형제자매와 같이 자랐다. 우리 집 사랑방 바로 앞에는 포도나무가 딱 한 그루 있었다. 나는 포도나무에 잎이 돋아 자라기 시작하면 벌써부터 꿈을 꾸었다. ‘이제 얼마 후면 포도가 달릴 거야.’ 상상할수록 기대는 커갔다. 까맣고 달콤한 포도가 주렁주렁 달리길 고대하며, 아침저녁으로 포도나무를 바라보곤 했다. 한 그루이긴 하지만 포도나무 넝쿨이 길게 벋어 우리 집 사랑방 앞은 포도나무 그늘이 저절로 만들어졌는데, 나는 그 밑에서 열심히 나무를 바라다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포도나무가 파란 알갱이 같은 것을 매달았다. ‘와! 이제 저것들이 커져서 포도가 되는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외치며 포도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포도나무는 그렇게 기다리던 포도송이를 정말 눈앞에서 매달았는데, 처음으로 포도 한 알을 입에 넣는 순간의 기쁨이란 참으로 달콤한 것이었다.

집 울타리를 따라서는 호박이 자랐고 울 안 텃밭에는 가지며 오이, 상추가 자랐다. 어머니는 반찬을 거의 울안에서 해결하시는 편이어서, 나는 울안에서 자라는 오이며 가지, 상추, 그리고 된장국에 넣은 호박잎을 먹고 자랐다. 한쪽으로는 돼지우리도 있었는데, 아버지와 함께 돼지우리에 짚단을 풀어 던져 줄 때면, 꿀꿀거리며 좋아하던 돼지의 울음소리가 요즘도 다정하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곤 한다. 그 돼지우리 지붕 위에는 하얗고 둥근 박이 자랐다. 달빛에 비치는 박을 보며 참 희고 이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뒤꼍에는 우물이 있었다. 꽤 깊은 우물이었는데, 여름이 되면 우리 가족은 수박을 두레박에 담아 이 우물에 담가놓곤 했다. 우물은 식수였지만 때로는 냉장고도 되었다. 그리고 밤에는 등멱을 하는 샤워장이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하천이 흘렀다. 어린 우리들은 여름에는 하천을 따라가며 놀았다. 좀 깊은 곳은 자연스럽게 풀장이 되어 초등학교 친구들은 하교 후나 방학이면 늘 이 하천 풀장에서 만나곤 하였다. 그때 배운 수영이 바로 개헤엄이었다. 네 발로 물을 헤치고 나가는 이 영법은 나름대로 장점이 많은 영법이었다. 일단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을 수 있어서 힘만 조절하면 얼마든지 떠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영법이니, 일단 물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친구들은 너나없이 개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하천에서의 물놀이는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다. 가끔씩은 귀에 물이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 깨금발로 깡충깡충 뛰면 신기하게 귀에서 물이 빠지곤 했었다.

이제는 고향에서의 그 모든 것이 추억 속에 남았다. 그래도 추억에 깃든 내 어린 시절은 코로나19로 힘겨운 이 시대에 새로운 희망으로 남는다. 정녕 다시 돌아갈 순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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