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1970년대 초창기 미국 이민을 간 교포들이 밤중에 갱들의 권총에 맞아죽는 경우가 매우 많았습니다. 어두운 골목에서 갱이 권총을 겨누면 한국인들은 가슴에 돈지갑을 넣고 다니는 습관 때문에 무심코 손을 양복 가슴 주머니에 넣습니다. 갱이 보기에는 권총을 꺼내려는 동작으로 보이고 그래서 총을 발사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두 손을 든 채로 한쪽 손끝으로 가슴을 가리켜서 지갑이 거기 있으니 꺼내가라는 표시를 해야 죽지 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버릇은 나도 모르게 나오는 법이어서 이런 불상사가 소문처럼 계속 들려 왔더랬습니다.

사격장에서 규율은 엄격합니다. 자칫하면 사람이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뛰거나 함부로 나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총을 쏘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손만 가만히 듭니다. 총알이 안 나간다고 총을 들고 장교에게 달려갔다가는 그대로 조인트 까입니다. 사격장에서는 엄격한 행동 규칙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강제되는 규율이 있고, 알아서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활도 이렇습니다. 활은 무기 종류입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거나 다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규율이 엄격합니다. 활이 지역의 자치 조직으로 성장하면서 대부분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이 규율이 자리 잡았습니다. 활터 예절은 사규(射規)라 하여 매우 엄격한 편입니다. 젊은이들이 이런 점을 무척 싫어하지만, 이 경우 예절은 남과 나 모두를 지키기 위한 원칙입니다.

활터의 가장 중요한 예절은 셋입니다. 등정례, 팔찌동, 초시례입니다. 활터에 올라가는 것을 등정(登亭)이라고 합니다. ‘등’은 오를 등 자죠. 활터가 설령 우리 집보다 더 낮은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등정이라고 합니다. 등정은 지표상의 높낮이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심리상의 높낮이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춘천이나 원주 사람들이 등고선 높이가 한참 더 낮은 서울에 올라간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활터에 올라가면 먼저 온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등정례입니다. “왔습니다.” 라고 인사하면 “오시오.”하고 받습니다. 팔찌동은 설자리에 서는 순서를 말합니다. 대부분 구사 우선으로 서고, 그다음으로 나이순으로 섭니다. 과녁을 바라보고 설 때 왼쪽이 높은 자리입니다. 왼팔로 활을 잡는 사람을 오른활(우궁)이라고 하는데, 오른활의 경우 왼팔에 팔찌를 찹니다. 그래서 그 팔찌 찬 쪽이 높다는 뜻으로 ‘팔찌동’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되어 첫 시를 낼 때 ‘활 배웁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옆 사람들은 ‘많이 맞히세요.’ 하고 덕담으로 응수합니다.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지켜야 할 예절입니다. 다만, 활터에 올라왔는데, 사람들이 사대에서 활을 쏘는 중이면 인사를 생략하고 나중에 다 쏜 뒤에 합니다. 활 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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