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나는 초등학교 근처 당산 동굴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소위 선수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어? 니가 웬일이야?’라는 표정이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없이 가방을 펼쳤다.

“이게 뭐야? 혹시…”

“응 그려! 담뱃잎!”

그 날 동굴 안은 난리가 났다. 철없던 몇몇 꼬맹이들이 최고참 6학년이라고 어른 흉내를 내던 시절이다. 예상치 못했던 나의 보따리는 그들에게 꿈과 같은 선물이었다. 그 후, 선수는 선수끼리 몰려다니던 그들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절친한 친구들이다.

여름방학이 가까워 오면 내 마음은 벌써 시골 이모님 댁으로 달려간다. 시외버스를 타고 보천에서 내려 한 시간이상 걸어 들어간다. 아니 길가 개울에 들어가 물장난도 치고 알록달록 예쁜 나비도 쫓고 하느라 두 세 시간은 걸렸다. 꼬마가 그 시골집까지 찾아간 것도 신기하다. 시골 동네 친구들은 언제나 스스럼없이 나를 반겼다. 이모님 댁에는 꺽다리 황토집이 있다. 놀이 중 친구들이 숨어들어간 꺽다리 황토집의 문을 열고 얼굴을 넣었다. 칠흑처럼 컴컴하다. 후끈한 열을 품고 있다. 묘한 냄새가 훅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위를 보는 순간 담뱃잎 더미가 나를 덮쳤다.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는 들리는데 나에게는 어둠뿐이다. 담배 건조실이었다.

이모님 댁은 담배 농사를 지었다. 그 동네 밭은 온통 담배 밭이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정성으로 싹을 키우고, 퇴비한 밭을 쟁기질로 간 뒤 어린 묘를 옮겨 심었다. 한 여름에는 며칠에 한 번씩 담배 잎을 따다가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새끼줄에 꼬여 건조실에 널었다. 높다란 꺽다리 건조실 내부는 사각형 벽을 따라 팔목 굵기의 나무로 빙 둘러 있다. 위로 십여 단이 있어 많은 양의 담배 잎을 널 수 있게 되어있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로 십상이다. 담배 잎을 건조실에 넣은 후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불을 지펴 가마를 가열시킨다. 이렇게 가마를 가열시키는 과정이 담배 잎의 품질을 좌우한다. 이때는, 이모님과 이모부님 아니 모든 식구들이 예민해진다. 도공이 도자기를 굽듯이 온 집안이 숙연하다. 잘 쪄진 이 잎을 적당한 습도에 숙성시킨 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세심한 손길로 다듬어 수매품으로 완성된다. 이 날은 이모부님도 인자함을 되찾아 인심이 넉넉하고 동네 아낙네들은 행복한 분위기에 취해 수다로 너스레다.

이모님은 평생 동안 담배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잎담배를 수매하기 위하여 안덕벌 제조창에 오시는 날이면 우리 집도 명절 날 분위기였다. 수매가 끝나면 이모부님은 제조창 골목 순대국집에서 낮이 익은 농부들을 만나 걸쭉한 막걸리와 경험담으로 한해 농사일의 피로를 풀었다. 이모님은 양말, 속내의 등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우리 집에 오셨다. 한 해 동안 고생으로 일구신 결실을 나누어주신다. 이모님은 온화하며 여유롭고 평온하셨다. 농사일의 고단함은 시골 밭에 놓고 오셨다.

담배는 많은 농부들에게 평생 고단하고 힘든 짐이었다. 하지만 동네 아낙네들의 즐거운 수다였고 따듯한 나눔이었다. 농부들이 몇 십 년을 지탱해 올 수 있었던 삶의 원천이었고 행복이었다.

2004년 청주 제조창은 산업 환경의 변화로 담배 생산을 중단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져가기 시작했다. 이모님 댁 담배 농사도 멈추었다. 이모님은 청주에 사는 큰 아들 집으로 오셨다. 농사로 고생할 일도 없고 경제적으로 부족함도 없으시다. 하지만 수매를 마치고 오셨던 이모님의 모습은 이제 뵐 수 없다.

시골 이모님 댁 꺽다리 황토집은 간 곳이 없고 이모님은 옛 제조창을 넋없이 바라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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