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대안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되었죠. 이렇습니다.

첫째, 현행 한자의 복잡한 획을 고쳐서 좀 더 편하게 만들어 쓴다.

둘째, 표의문자인 한자를 버리고 표음문자를 빌어 쓴다. 이 경우 알파벳을 선택해야 한다. 영어권의 알파벳이 있고, 중화권의 한글이 있다.

이렇게 놓고서 고민을 합니다. 일단 첫 번째를 제쳐놓고 보니 고민은 표음문자체계로 건너가야 한다는 것과, 영어의 알파벳을 쓸 것이냐? 한글을 쓸 것이냐? 하는 아주 단순한 문제로 귀결됩니다. 바로 여기서 알파벳을 쓰기로 결정이 나면서 중국은 1980년대 접어들어 유치원과 소학교에서 알파벳을 가르치는 체제로 나아갑니다. 컴퓨터 시대가 개막되면서 먼저 알파벳으로 자신들의 문자를 적고 거기 떠오른 동음이의어 중에서 바라는 글자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죠.

왜 한글은 마지막 과정에서 제외되었을까요? 아마도 문자의 특수성과 자신들을 섬기던 쫄따구 나라의 글자를 가져다 써야 한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겠죠? 결국 이래서 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쓸 문자로 자리 잡을 기회를 놓칩니다.

현재 중국어를 기록하는 한자는 <간자체>입니다. 흘림체나 약자가 아니라, 중국 정부에서 복잡한 획을 줄이고 잘라내어 획수를 최대한 억지로 줄여서 만든 글자입니다. 그래서 중국인들 빼고서는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한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것이 뭐가 문제냐면 한자의 국제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북아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는 중국으로서도 큰 손실입니다. 옛날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우리나라 군인들은 베트남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들도 우리도 각기 자기네 나라 말을 쓰지만 글은 한자로 써서 뜻을 전달할 수 있었던 거죠. 군대 시절의 이야기는 워낙 뻥튀겨지기 때문에 다 믿기는 힘들지만, 월남전에 참전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휴일에 시내에 나가서 여자 꾀었다는 무용담은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무용담이 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저의 귀에는 그들이 현지 여자들과 소통할 때 한자로 써서 했다는 것이 쏙 들어옵니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이고 태국도 그렇습니다. 동남아시아 어디를 가든 한자로 써서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신들이 옛날에 중국 베이징에 가면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신들과 얼마든지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말은 안 통해도 그들은 글로 서로 사귀며 벗이 되었던 것이고, 중국으로 오가는 사신을 통해서 끝없이 안부를 묻고 학문을 나누는 교류를 해왔습니다.

중국 정부가 간자체를 제정함으로써 이런 한자의 국제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간자체는 중국을 동양사회에서 스스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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