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조선 시대 14명의 왕을 배출한 동작릉
[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조선 시대 14명의 왕을 배출한 동작릉
  • 충청매일
  • 승인 2021.07.0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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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대 경영학과

[충청매일] 서울현충원은 조선 시대 중종의 후궁인 창빈안씨가 처음으로 자리 한 곳이다. 창빈안씨는 연산군 5년(1499년)에 태어나 아홉 살 때인 중종 2년(1507년)에 궁녀로 뽑혔다. 안씨는 정숙하여 성종의 3계비인 정현왕후를 모셨다. 대비전에 왕이 드나들다 안씨는 스무 살에 대비의 아들 중종의 성은을 입어 영양군, 덕흥군 등 2남 1녀를 낳았고 창빈안씨는 1549년 51살에 죽자 경기도 장흥 땅에 모셔졌다.

그러나 이곳이 풍수적으로 나쁘다 하여 1년 후인 1550년 동작진이 있는 현재의 서울현충원 자리로 이장을 하였다. 동작진에 창빈안씨 묘를 이장한 후 1552년 닥흥군의 아들 하성군이 태어났다. 1567년 13대 왕 명종이 후손 없이 죽자, 명종이 1565년(명종 20년)에 후사로 낙점한 한대로 16세에 하성군은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14대 왕 선조이다. 선조는 후궁의 몸에서 태어나 서자가 왕위에 오른 첫 번째 사례이다. 선조가 왕위에 오르자 선조의 할머니가 모셔진 창빈안씨 묘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 후 창빈안씨 묘는 동작릉으로 불리게 되었고, 조선 시대 최고의 명당으로 대표적인 풍수 답사지가 되었다.

동작릉이 위치한 곳은 한남정맥이 북쪽으로 올라와 관악산을 일으키고 다시 서달산으로 솟았으며 좌우로 날개를 펴고 좌청룡 우백호가 뻗어서 감싸주는 중심부에 위치한다. 관악산이 조산이 되고, 서달산이 주산이 되며, 장군봉이 현무봉을 이루면서 앞으로는 명당이 펼쳐지고 한강과 만나면서 생기가 응축되는 혈처가 뭉쳐졌으니 풍수에서 말하는 교과서적 명당의 요건을 갖추었다.

6·25전쟁으로 국군 희생자가 발생하자 이들을 위한 국군묘지가 필요한데, 동작릉이 있는 곳은 주변 지역이 잘 보존되었고, 해방 후 국유지로 편입되어 서울 근교에 국군묘지를 마련하는 데는 최고의 적격지였다.

1950년 인천 상륙작전 중 한강 도하 시 숨진 해병대원들이 이곳에 임시 안치되었고, 1955년 전쟁 희생자를 위한 전사자를 안장할 국군묘지로 동작릉 일대가 조성되었다. 1965년에는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국가유공자까지 이곳에 모시게 되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창빈안씨 묘 바로 아래 자리하였고, 1970년 육영수 여사가 갑자기 서거하자 장군봉 위에 모셔졌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도 이곳에 자리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창빈안씨 묘 바로 오른쪽에, 김영삼 대통령이 좌측 건너편에 들어와 창빈안씨는 서울현충원의 가장 중심지에서 전후좌우로 네 명의 대통령이 호위하는 형국이 되었고, 수만 명의 장군과 병사, 국가유공자들이 사방에서 바라보는 중심지에 서게 되었다,

조선왕국이 518년간 계속되면서 부계로는 태조 이성계의 자손이요, 모계로는 창빈안씨 이래 제14대 선조부터 27대 순종에 이르기까지 343년간 14명의 왕이 모두 창빈안씨 후손에서 나왔다. 창빈안씨 묘는 명당 중의 명당이요, 동작릉이 있어 이곳 일대가 보존되었다. 덕분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 묘역이 되었고, 서울 현충원은 국립묘지 중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정치인도 이곳을 찾아 마음을 다짐한다, 앞으로도 이곳이 국가유공자를 더 많이 모실 수 있도록 정비되고, 나라의 역사를 되뇌어 보는 성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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