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전 220년,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전이었다. 어느 날 진왕이 장수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초나라를 점령하려면 얼마의 병력이면 되겠는가?”

그러자 젊은 장군 이신이 먼저 대답했다.

“20만이면 충분합니다.”

이어 나이든 장군 왕전이 대답했다.

“60만 대군이 아니면 결코 초나라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진왕이 말했다.

“왕장군은 늙어서 이젠 겁쟁이가 됐구려. 이번 일은 용맹한 이신에게 맡기리라.”

다음날 이신은 20만 병력을 이끌고 화려한 출정식을 거행하였다. 반면에 왕전은 장군직을 내려놓고 조용히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신은 군대를 분산하여 초나라 곳곳을 함락시켰다. 총공격을 위해 성보에서 이신의 군대가 모두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이때 이신은 성대한 만찬을 베풀어 장수들과 병사들을 위로했다. 그런데 그날 밤 초나라 군대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이신의 군대는 놀라 큰 혼란에 빠졌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크게 패하고 말았다.

진왕은 패전 소식을 접하자 왕전을 다시 불렀다. 그리고 60만 대군을 편성해 전권을 부여하였다. 군대가 출정하는 날, 왕전은 진왕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하였다.

“폐하, 제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시골에 집 한 채를 하사해주십시오.”

진왕은 그런 작은 일은 걱정하지 말라며 꼭 이기고 돌아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왕전은 초나라 국경에 들어설 때까지 세 번이나 왕에게 사자를 보내 시골집을 확약받았다. 진왕은 그때마다 그저 크게 웃으며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였다. 왕전의 부하 하나가 이를 이상하게 여겨 왕전에게 물었다.

“시골집 하나를 얻기 위해 사자를 세 번씩이나 보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에 왕전이 말했다.

“진왕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 진나라 군대가 모두 내 손에 맡겨졌는데, 내가 굳은 결의를 보인다면 왕과 대신들이 도리어 나를 의심할 것이다.”

드디어 왕전의 군대가 초나라로 진격하였다. 하지만 수비만 할 뿐 싸우려 하지 않았다. 왕전은 병사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게 하고 편히 쉬게 했다. 어느 날 초나라 부대가 탐색하러 성문을 나섰다. 왕전의 군대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초나라 부대가 경계를 풀고 그냥 성으로 돌아가려 했다. 왕전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추격을 명했다. 진나라 군대가 단숨에 성에 돌입하니 초나라 병사들은 일대 혼란에 휩싸여 뿔뿔이 달아났다. 왕전은 이 승세를 타고 초나라 장수들을 사로잡고 성을 점령하였다. 이어 초나라 모든 영토를 진나라로 편입시켰다. 왕전의 활약으로 진왕은 마침내 천하를 모두 평정하여 드디어 진시황제에 올랐다.

대지여우(大智如愚)란 큰 뜻을 가진 사람은 하는 짓이 어리석게 보인다는 뜻이다. 당신의 인생이 항상 바쁘고 급하다면 그건 눈앞에 보이는 것만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큰일은 시간이 필요하니 반드시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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