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록의 계절 6월이다. 산을 보아도, 들을 보아도 온통 푸른빛이다. 도심의 가로수도 푸른빛을 더해 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이 다 신록으로 가득 찬 것 같이 느껴진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신록은 ‘늦봄이나 초여름에 새로 나온 잎의 푸른 빛’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 6월은 푸른빛이다.

수많은 시인들이 6월을 노래했다. 황금찬 시인은 그의 시 ‘6월’에서 ‘6월은/ 녹색분말을 뿌리며 / 하늘 날개를 타고 왔다’고 했다. 시인의 말대로 온 천지가 신록이고 녹색이다. 6월의 산하가 얼마나 푸르렀으면 녹색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다고 했을까? 이어서 시인은 ‘맑은 아침 / 뜰 앞에 날아와 앉은 / 산새 한 마리 / 낭랑한 목소리 / 신록에 젖었다’고 읊고 있다. 시인은 6월 어느 날 맑은 아침에 뜰 앞에 찾아온 산새에게서 신록에 젖은 목소리를 듣는다. 그의 시구대로 산새도 신록에 젖는가 싶다.

시인은 ‘신록은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다.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 계절’이 바로 6월이다. 우리는 지금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6월’의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말한다. ‘지금은 이 하늘에 / 6월에 가져온 풍경화를 /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 바라보고 있다’고.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걸려 있는 6월’은 그렇게 풍경화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황금찬 시인 말고도 6월을 노래한 시인은 참 많다. 임성택 시인은 그의 시 ‘유월 연가’에서 ‘중천에 걸린 태양 / 빛살에 곱게 빚어내 / 나뭇잎에 드리우고 // 푸른 잎 유월 상달 / 흰 사시나무 가지/ 초록 이슬에 머금었다 //’고 읊었고, 김달진 시인은 그의 시 ‘6월’에서 ‘고요한 이웃집의 / 하얗게 빛나는 빈 뜰 우에 / 작은 벚나무 그늘 아래 / 외론 암탉 한 마리 백화와 함께 조을고 있는 것/ 판자 너머로 가만히 엿보인다//’고 읊었다.

그리고 윤보영 시인은 그의 시 ‘6월 편지’에서 ‘6월에는/ 편지를 적겠습니다/ 푸른 들판처럼 싱싱한 / 내 그리움을 몽땅 꺼내놓고/ 초록편지를 적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시의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자연스럽고 진솔한 표현들이 읽는 이를 시의 세계로 깊숙이 빠져들게 하는 아름다운 시편들이다.

6월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픔이 많은 것 같다. 6월 1일은 의병의 날이다. 그리고 6일은 현충일이다. 10일은 6·10 민주항쟁 기념일이고, 25일은 6·25 전쟁일이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아픈 날들을 보면서 사뭇 숙연해진다. 무엇이 이 아름다운 산하를 역사의 질곡 속으로 끌고 간 것일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피로 얼룩진 6월의 역사를 기억해야만 하는 것일까? 도대체 민족 간의 싸움은 왜 일어나며,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역사의 현장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분노와 미움은 다른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것일까?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가슴이 아리다. 인간의 이기심은 끝이 없고, 수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정치적 판단과 침략 야욕의 희생양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6월의 녹음처럼 싱싱한 젊음이 가을날 낙옆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이 저리다. 그 시퍼런 녹음이 비에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뒹글다가 사그러지는 상상에 몸서리를 칠 때가 있다.

우리는 황금찬 시인의 시구대로 ‘액자 속의 그림’처럼 멋진 ‘꽃처럼 아름다운’ 이 계절에 풍광을 즐기며 조용하고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는 정녕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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