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신분 간의 질서가 뚜렷했고, 사람들이 쓰는 말을 통해서 그 질서가 저절로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아랫사람이 양반 밑에서 “소인네”라는 말을 쓰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주로 작다는 뜻의 소(小)자를 앞에 붙였습니다. 소인(小人)은 작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난장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신분이나 인물 됨됨이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뜻이 담긴 말이죠. 발음상 더 줄어들면 ‘쇤네’가 됩니다. 소인 이외에도 소승(小僧), 소자(小子) 같은 말도 우리가 많이 듣는 말이죠. 반면에 상대를 높이는 말도 있습니다. 주로 벼슬 이름을 붙여서 불렀습니다. ‘나리, 영감님, 대감님’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활터에도 이런 말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활터에서는 남을 대접해줄 때 ‘접장(接長)’이라고 합니다. 접은 마늘을 세는 단위에 있죠. 한 접 두 접 하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화살도 10개를 1접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접’이라는 말은 동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동학에서 운용한 제도가 포접제도입니다. 작은 사람의 단위를 묶어서 ‘접’이라고 했고, 접을 몇 개 묶어서 ‘포(包)’라고 했습니다. 우두머리를 접주라고 했습니다. 접장이라는 말은 동학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전체에 널리 쓰이던 용어였습니다. 서당에서도 요즘으로 치면 반장쯤에 해당하는 학동을 접장이라고 불렀고, 보부상들도 우두머리를 접장이라고 불렀습니다.

활터에서는 남을 대접해서 부를 때 접장이라고 합니다. ‘김 접장님, 이 접장님’, 이런 식으로 불러주는 것이죠. 호칭이 애매할 때는 모두 이렇게 불러줍니다. 이렇게 호칭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임원의 명칭으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강경 덕유정의 경우 활터 대표를 사백이라고 하는데, 이 사백을 보좌하는, 요즘으로 치면 부사백에 해당하는 사람을 접장이라고 합니다. 덕유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남이나 호남 지방의 활터에서는 활터에 따라 사수나 사장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런 활터에서도 부사수나 부사장을 접장이라고 한 곳이 많습니다. 이런 기록은 활터 현판 같은 기록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활과 관련된 서적에서도 이런 식으로 정리되었습니다.(‘한국의 활쏘기’)

이런 것을 보면 제가 앞선 글들에서 몇 차례 활터는 그대로 ‘살아있는 조선’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실감 나는 표현임을 알게 됩니다. 조선 시대의 풍속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 활터입니다. 그런데 접장이 ‘천한 보부상들이 쓰던 용어’이니 활터에서는 쓰면 안 된다는 궤변을 퍼뜨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기에 동조하여 활터에서 접장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공갈 협박까지 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공갈 협박이란 표현은 거짓이 아닙니다. 경기도의 한 활터에서는 ‘명궁’이자 ‘사범’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바람에 활터 사람들이 접장이라는 말을 쉬쉬하면서 쓴답니다. 이게 젊은이들에 대한 늙은이의 공갈 협박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접장이 남을 높이는 말인데 반해, 자신을 낮추는 말도 있습니다. 앞의 쇤네 같은 식이죠. 활터에서는 ‘사말(射末)’이라고 합니다. 또는 ‘하말(下末)’이라고도 합니다. 인천 지역의 편사에서 사통이나 답통을 보내는데 거기에 자신을 나타낼 때 사말이라고 쓰곤 합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