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엄마! 나뭇잎이 왜 떨어지는 거야?”

“겨울이 오고 있어서 그래.”

“겨울이 오면 왜?”

“겨울이 오면 날씨가 추워지고 날씨가 추워지면 나뭇잎이 떨어지는 거야.”

“날씨가 추워지면 왜 떨어져?”

“…!”

“엄마! 하늘은 왜 파래?”

“얘는 별걸 다 묻고 그래. 저리가!”

어린 아들이 엄마에게 하는 질문은 끝이 없다.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던 엄마가 급기야 짜증을 내며 핀잔을 준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아들의 질문은 잦아든다. 그렇다고 아들의 궁금증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궁금해 하면 혼이 난다는 것을 깨닫고 호기심의 문을 점점 닫고 있을 뿐이다.

지적 탐구력의 발달시기에 아이들은 매사가 궁금하다. 이 시기에 궁금증의 촉발은 아이의 일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사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은 ‘가로×세로’라고 배웠을 때, ‘아! 공식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냥 받아들이는 아이와 ‘왜? 가로×세로를 하는 거지?’라고 궁금해 하며 성장한 아이의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다르다. 세상만사의 피상을 보는 것과 세상만사에 담겨있는 이치를 깨닫는 것의 차이 정도일 수 있다.

엄마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중요하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다. 오죽하면 출산을 장려하고자, 자녀를 양육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녀장려금 제도까지 만들어졌을까.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자녀가 적은 가정이 많다. 이렇게 자녀가 적은 반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애착이 더 집요해진 듯싶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아무리 많이 마음을 써주어도 과하게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사랑의 방법은 부모가 사랑하는 그 마음과는 달리 자녀에게 내재된 잠재역량의 성장을 저해한다. 자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까지 엄마가 결정해 주고 자녀의 일정을 모두 엄마가 챙겨주면, 아이는 판단력과 소신을 잃고 문제해결력의 성장도 기회를 잃는다.

“그 선생을 불러 내! 내가 본때를 보여주게!”

어느 학생의 아버지가 자녀의 담임 여선생을 불러내라고 소리치며 학원을 뒤집어 놓는다. 자녀 앞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꾸지람하던 중에 볼펜으로 학생 손바닥을 몇 차례 때려서 생긴 일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이런 장면을 보고 그의 자녀는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배웠을까. 마음이 아프다.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도 자녀에 대한 사랑의 표현도 자녀에겐 중요하다.

아주 오래전에는 맞벌이 가정이 적었다. 엄마는 살림을 하며 자녀와 시간을 함께 하는 가정이 많았다. 많은 엄마들이 교육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엄마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그 시절 아이들은 열악하게 자랐다. 개구쟁이 망둥이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랐다. 그만큼 내적 역량의 성장도 자유로웠다. 하지만 엄마 품에서 자랐다. 엄마 품에서 정을 배우고 엄마 품으로 착한 사람 바른 사람을 배웠다.

요즘은 맞벌이로 아빠도 엄마도 바쁘다. 자녀를 품에 안아 키울 틈이 없다. 가슴으로 품어 마음을 전하고 아름다운 성장을 꿈꾸게 하기에는 부모도 자녀도 너무 바쁜 세상이 되었다.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 보다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로망인 세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런 세상이든 이런 세상이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다만 바쁘고 세분화된 이런 세상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말 한마디와 사랑이 담긴 행동들이 이제 좀 더 전문적인 사고思考가 요구된다. 엄마도 아빠도 ‘옳바른 부모론’을 공부해야 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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